한해 정리하는 연말, 위태로운 채무자의 삶을 위협하는 누락 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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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정리하는 연말, 위태로운 채무자의 삶을 위협하는 누락 채무

‘비금융채권’ 금융회사 빚과는 결이 다른 채무들

24.12.24 15:16l최종 업데이트 24.12.24 15:16l 김미선(teresa0923)

“10년 전에 폐업하면서 빚은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몇 년 전부터 기억도 나지 않는 물건 값을 독촉하네요.”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한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 채무자는 빚을 상환했는지 아닌지로만 구분되는 나날을 견디고 있다.

올해 수많은 뉴스 속에 국세청이 발표한 폐업 신고한 자영업자 뉴스가 뜨거웠다. 100만 명을 넘는다는 통계였다. 경기를 체감할 수 있는 리트머스다. 채무상담을 전담하는 상담사들도 이와 같은 변화를 느낀다. 상담 신청층이 극빈층이나 금융취약층에서 중산층, 특히 소상공인들로 옮겨갔다고 지적한다. 지금의 취약계층 역시 과거 IMF 전후에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삶을 누렸던 이들이다.어쩌면 우리는 중산층, 영세 자영업자의 미래를 채무상담 현장에서 먼저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IMF 이후 민간 가계는 복잡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보유하게 되었다. 똑같은 조건의 재형저축이나 저축 보험을 가입하던 과거와 달리, 가입한 보험과 금융 상품이 십여개가 넘고, 대출상품 종류도, 가지수도 다양하다. 당연히 정확한 상품명, 금액, 이자율 그리고 잔액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범한 가정이 이러한데, 자영업자는 어떨까? 금융대출, 보증대출 이외에 또다른 채무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폐업 후 체납된 건강보험료, 부가가치세, 임금채무 외에도 렌탈 물품 사용 대금이 있다.

렌탈 대금은 일반 금융 채무와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는 상품의 구조, 계약 상의 책임이나 의무 등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돈, 즉 사용한 물건에 대한 대금을 지불했는지 여부에 대해 논하려 한다.

‘렌탈’은 금융회사 돈을 빌려 재산이나 상품 구매 혹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돈을 빌리는 거래가 아닌 일정 기간 이용한 물건에 대해 시간을 사용한 ‘값(대금)’의 이행과 관련있다. 대표적인 렌탈이 주택의 임대차 계약이다.

모든 시간이 지나 덩그러니 남는 빚이 바로 렌탈 채무나 할부 채무다. 신용카드 결제로 대금 계약하였다면, 금융 채무가 되어 조정받을 수 있다. 결제 방법이 신용카드가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현대인들의 은행 계좌가 돈이 스쳐 지나가는 통로로 이용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결제해야 할 청구서도 수십 가지나 된다. 더 급하거나 먼저 결제해야 하는 것들이 빠져나간 뒤 통장이 텅 빈다. 결제하지 못하고 남은 대금들이 뒤에 남았다가 채무자가 가장 힘들 때 들이닥친다.

독촉을 피해 가출하고 행려자나 노숙인이 되어 수급자로 살다가 파산에 이른다. 파산과 면책으로 채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하나 남은 누락 채무가 괴롭힌다. (누락 채무는 다양한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파산을 대행한 곳에서의 실수로도 누락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소위 ‘비금융 채권’으로 분류되는 채무다. 비금융 채무를 회수하려고 채권사는 신용정보사에 위탁 추심한다. 미납된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의 살림살이에 독촉장을 붙이고 보증금에 가압류를 걸어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쫓겨날 위험에 내몰기도 한다.

자동차 할부금이나 자동차 담보 대출, 자동차 리스는 그나마 캐피탈 회사와 같은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회사 상품이라 정리할 여지가 있다. 금융은 가상이기에 할인도 되고 조정도 되지만, 물건의 대금은 실체이고 실물이다. 현재 그 물건 값이 헐값이든 그 이하든 중요하지 않다. 물건의 사용료 또는 물품 대금 계약은 과거 시점에 이뤄졌기에 그 물건 값을 제때에 이행하지 않았다면 연체 이자까지 물어야만 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을 그렸다. 더 이상 물건을 소유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내게 필요한 물건을 선택하여 그 때 그 때 유행하는 물건으로 잠시 사용하고 돌려주면 된다며,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물건에 자유롭고 소유에서 오는 불편함 대신 단순한 현대인의 살림과 생활을 칭송했다. 그러나 그는 간과했다. 소유가 아닌 그저 잠깐 사용했다 하더라도 그 사용한 시간을 돈으로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현대인 대부분은 그 지불대금이 크든 작든 돈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시민단체 롤링주빌리는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빚으로 생명과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을 고발하고, 우리 모두 그런 채무자로 전락할 수 있는 금융 환경의 구조적 문제점을 세상에 알려왔다.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하여 금융 제도와 환경도 조금씩 나아졌다. 조정 프로그램도 채무자 입장에서 개선되었다. 추심과 독촉도 채무자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가 적지 않다. 바로 비금융 채권이다. 앞으로 비금융 채권인 렌탈 시장이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시장이 넓어진다는 것은 편리함과 수요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있지만, 그만큼 그 안에 위험과 소비자가 간과할 수 있는 문제점도 숨어 있다는 뜻이다. 모두가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롤링주빌리를 상징하는 현수막주빌리은행은 비영리 단체 롤링주빌리의 애칭이며, 롤링주빌리 사무국 내에 걸려 있다. ⓒ (사) 롤링주빌리

출처 : 한해 정리하는 연말, 위태로운 채무자의 삶을 위협하는 누락 채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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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9T17:13:22+09:00 2025.02.19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