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금융법) / 롤링주빌리(주빌리은행) 이사장 EBN산업경제 winean@ebn.co.kr 입력 2025.03.17 07:00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금융법) / 롤링주빌리(주빌리은행) 이사장
국내 법·제도에는 정률 또는 정액으로 규정된 조항들이 흔한데, 세상의 빠른 변화를 적절히 반영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예컨대, 이자제한법은 “이자의 적정한 최고한도를 정함으로써 국민 경제생활의 안정과 경제정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2007년 제정·시행되었는데 당시 최고금리는 40%였다(동법 제2조 제1항). 2007년 8월 한국은행 기준금리(당시는 ‘콜금리 목표’)는 5%이었는데 최고금리는 기준금리의 8배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후 금융시장의 지속적인 금리 인하를 반영하여 이자제한법 상 최고금리는 2021년 4월 20%로 인하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한 당시의 기준금리는 0.5%에 불과했다. 즉, 최고금리가 기준금리의 40배에 해당하여 2007년 제정 당시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상속세도 비슷한 상황이 보인다. 1950년 상속세법 제정 당시에는 5천만 원 초과 금액에 대한 최고세율은 90%였다. 이후 60년간 눈부신 경제 발전에 힘입어 2010년 개정된 최고세율 적용기준 금액은 30억 원으로 60배가 인상된 것이고, 세율은 50%로 인하되어 현재에도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한국전쟁 이후 2015년까지 약 500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을 기준으로 보면, 최고세율 적용기준 금액과 세율 모두 상당히 인하된 것이다. 2010년도 1인당 명목 GNI는 약 17,000불이고 명목 GDP는 약 1,000조 원이다. 2024년에는 각각 약 36,600달러와 약 2,500조 원으로 2010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따라서 현재 개정 추진 중인 상속세의 최고세율 적용기준 금액과 세율의 조정 필요성은 공감한다.
다만, 정률 또는 정액으로 규정된 법 조항은 물가나 소득수준이 크게 변하는 경우 원래의 입법 취지를 희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최고금리의 역설적 결과
이자제한법 상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한 2021년 당시 기준금리는 0.5%였다. 그러나 이후 시장금리의 상승에 따라 2023년 1월 기준금리는 3.5%까지 치솟았다. 불과 2년 미만의 기간에 기준금리가 7배나 상승한 것이다. 그 결과 최고금리와 기준금리는 6배 미만 상황으로 급전직하했고, 서민정책금융 축소의 영향 등으로 서민들의 금융 접근성이 크게 악화하였다. 아무리 좋은 서민정책금융이라도 시장금리의 변동에 역행할 수 없는 현실적 사정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 실제로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된 서민들은 불법사금융 조직의 초고금리 대출로 몰리게 되었는데, 이는 서민을 돕기 위해 20%로 제한한 최고금리가 도리어 서민이 삶을 옥죄는 ‘역설적 결과’(Paradoxical Outcome)를 초래한 것이다.
서민금융의 위축은 금융배제를 심화시키며,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을 초래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신용도가 낮은 계층도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과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예컨대, 최고금리를 20%와 같은 정률로 정한 것에 더하여 기준금리의 10배라는 변동적 기준을 도입하면 선한 정책의 역설적 결과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상속세의 공정성, 국제적 정합성 및 정책적 당위성
우리 ‘상속세법’은 1950년 제정되었다. 동법의 신규제정 이유는 “소득세제에 대한 보완세로서 상속세제를 규정함으로써 세수확보와 아울러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실현시키려는 것”이었다. 동법은 1996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으로 전면개정되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목적에는 “상속세 및 증여세의 공정한 과세, 납세의무의 적정한 이행 확보 및 재정수입의 원활한 조달”(동법 제1조)만을 규정하여 ‘실질적 평등의 원칙’은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들어 상속세는 고액 자산가만 부담하는 세제라는 인식이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실거래 반영 비율이 높아지면서 중산층까지 상속세를 부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거의 매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공제액을 인상하고 있다. OECD의 주요국들도 각종 공제 항목의 공제금액을 인상하여 상속세의 실효세율을 낮추고 있다. 이는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세 부담 증가를 조정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속세 인적공제 금액은 1997년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인적공제액을 그에 상응하여 높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세 부담이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공제금액의 변동은 과세의 공정성 면에서 당연히 필요한 제도이다.
1950년의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미미한 주변국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주요국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기존의 정액·정률로 고정된 세제의 불합리성을 탈피하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여 공제금액을 주기적으로 인상하는 합리적 제도를 도입하여 과세의 공정성 측면에서 국제적 정합성을 확보할 필요가 크다.
상속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지만 부의 재분배를 통한 자본주의 모순을 제거하는 수단이라는 정책적인 당위성을 가진 조세이다. 따라서 상속세의 정책적 당위성을 유지하면서 중산층의 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예컨대, 상속금액 상위 1%, 3%, 5% 등 분위(分位)별 차등과세를 제안한다. 즉, 기존의 기준인 상속재산의 금액 이외에 상속금액의 분위를 기준으로 상속세율을 적용하여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을 크게 덜어줌으로써 정책적 당위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한편, 최고세율은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하여 국부의 유출을 예방할 필요가 크다.
국내 법제도의 정률 또는 정액으로 규정된 조항에서 비롯되는 불합리성은 변동률, 변액 또는 분위의 도입 등을 통한 합리적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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