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금융법) / 롤링주빌리(주빌리은행)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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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16 02:00
금융정책은 협의로는 통화정책을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감독정책, 금융개혁 및 규제완화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우리 경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출증대를 위한 강력한 금융정책에 힘입어 오늘날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했다. 그러나 대기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는 균형적인 중소기업 성장과의 이해 상충을 초래했고 상장기업의 배당성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즉, 대기업이 되어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기에 유리한 금융정책적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대다수 기업이 이익금의 주주환원보다는 미래의 성장을 위한 사내유보금 적립에 힘썼다.
KB증권에 따르면 2013~2022년 10년간 한국 상장기업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29%였다. 주주환원율이란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이 이익을 주주들에게 더 많이 나눠준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주주환원율은 92%에 달했고,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이 68%였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국내시장의 반응은 상당수 투자자의 파생상품시장, 해외주식시장, 가상자산시장으로의 이동으로 나타났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란 기업이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상장기업의 주식가격)를 올리는 것이 중심이 된다. 2024년 시작된 금융위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한국거래소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는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인하고 있다. 동 지수는 상장기업들의 주주환원율 및 기업가치 제고 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거래소의 2025년 1월 9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 시장의 ‘주주가치 제고’에 관한 관심이 크게 늘면서 ①자사주 매입 규모가 18조 8천억 원 수준을 기록했다. 자사주 매입 규모는 2023년 8조 2천억 원에서 10조 원 이상 늘어 2.3배 수준이 되었는데 이는 거래소 시스템상 관련 데이터가 존재하는 2009년 이후 최고치다. ②자사주 소각 규모도 2023년 4조 8천억 원에서 지난해 13조 9천억 원으로 2.9배로 늘었다. 밸류업 공시가 시행된 이후 지난해 말까지 ③밸류업 공시를 한 상장사는 102개사로 코스피는 85개사, 코스닥은 17개사였다. 대형사 중심으로 밸류업 공시에 나서면서 시총 1조 원 이상 기업 비중이 63%에 달했고, 코스피의 경우 시가총액 41%에 해당하는 상장사가 밸류업 공시를 마쳤다.
이는 주주환원율을 높이려는 금융위의 정책에 한국거래소가 협력하여 시장유인책을 개발·시행하면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도한 ‘성공사례’로 평가된다.
옵션 승수 5배 인상
반면, ‘실패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1년 금융위가 ‘옵션 승수 5배 인상’을 단행했는데 시장전문가인 한국거래소의 반대 의견을 무시한 독단적 금융정책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후 수년간 한국거래소 당기순이익은 현저히 줄었는데 시장참여자 상당수의 이탈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초 동 규제의 목표는 ‘개인투자자의 투기적 거래를 억제하고 기관투자자 중심의 거래를 통한 파생상품시장의 건전한 발전 도모’였는데 결과는 시장거래량 자체의 축소를 초래했다. 개인투자자뿐만 아니라 상당수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이탈 영향으로 KOSPI 옵션 시장거래량은 압도적 세계 1위에서 10위권으로 추락한 채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개인투자자 중 상당수는 미국 등 해외거래소와 가상자산 거래로 이동하는 등 한국거래소를 이탈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금융정책이 시장에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이다.
시장친화적 정책과 자본시장법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①국제적 기준에 다가서는 노력이라는 점 ②투자자와 건전한 상장기업 다수로부터 호응을 받는다는 점 ③한국거래소의 협조를 도출하였다는 점 등에서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금융위가 지속적인 시장친화적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자본시장법 제412조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는 앞의 실패사례가 반복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이기 때문이다. 동조는 한국거래소의 제반 규정을 제정·개정·폐지하는 경우에 금융위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 영국, 호주,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국 거래소들의 규정에 비교하면 금융위의 권한이 과하다. 주요국 거래소 관련 제도의 시사점은 ①공적규제기관과 자율규제기관의 긴밀한 협조체제 ②규제의 비용 대비 효용 개념 ③거래소의 독립성 확보 ④ 상장과 폐지 권한의 분리 등을 들 수 있다.
거래소의 사회적 공익성 및 시장의 건전성 유지와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하여 거래소의 정관을 비롯한 업무규정에 대한 금융위 사전승인의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다만, 승인 범위가 지나치게 넓으면 전문가인 거래소의 자율성을 해치게 되고 이는 결국 투자자 및 국가 경제에 피해가 전가되는 시장 역행적 정책이 재발 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향후 금융정책을 펼치는 데에는 정책당국이 시장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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