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문턱은 높아야 해요. 금융이 복지가 아니고, 금융이 제도가 아니잖아요. 그건 사업이에요.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금융에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하도록 자꾸 금융의 문턱을 낮추라고 하느냐고요. 금융은 공공이 아니라는 거죠.
서민 금융, 금융 소외, 은행 문턱이 높다, 는 등의 말에 우리는 속아온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호응해 정부의 대출 규제는 계속 완화됐다. 이제 빚을 내는 길은 너무도 많고, 쉬워서 거의 전 국민이 채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빚이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 지금 지갑을 열어보길 바란다. 꽂혀있는 카드가 몇 장이나 되는지 살펴보시길. 거기 있는 카드도 빚이다. 게다가 야금야금 ‘카드론’, ‘리볼빙 서비스’, ‘현금 서비스’ 등을 통해 당신은 빚을 내고 있지 않은가. 학자금 대출, 전세 대출, 담보 대출 등 빚은 모습을 바꿔가며 일생의 동반자가 되었고 자칫하면 벼랑으로 떨어지기 십상이 된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카드사, 대부업체, 저축은행의 광고가 쏟아진다. 노래를 부르고, 감성을 자극한다. ‘바쁠 때는 택시도 탄다’는 말도 하고, 카드 쓰는 모습을 멋있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거대한 최면 같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의 저자 제윤경의 말처럼 금융은 복지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내기 쉽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다. 그는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꾸 금융 회사에 소비하라고 하는 거잖아요.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것을 마치 공공성인 것처럼 금융 소외니,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복지를 말해야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모피가 필요한 게 아니고 외투가 필요한 거예요.”
그가 “파산은 권리”라고 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 돈이 없어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상식”(16쪽)이지만 “못 갚을 경우 어떤 형태의 형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야만적”(16쪽)이다. 그래서 채권 소각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바로 주빌리 은행이다.
아직도, ‘그래도 빚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 제윤경이 들려주는 금융사들의 민낯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길 바란다. 금융사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아니라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전 국민이 추심원 역할을 하는 셈
인권 침해가 되든 말든 금융사만 안전하면 되느냐는 질문이 날카롭게 꽂힙니다. 은폐된 진실이란 생각도 들고요. 금융 권력, 언론의 견고한 카르텔인데요. 처음 이 문제, 채무자 구제 운동에 빠진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소득층 경제 교육을 하는데 제일 심각했던 문제가 빚이었어요. 복지를 아무리 연결해줘도 빚이 문제가 되니까 자활 자체에 장애가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참여정부 때도 빚이 이런 식으로 땡처리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정부가 구제책을 많이 내놨거든요. 개인 파산 제도도 만들고요. 채무자들이 단체를 만들기도 했었어요. 신불자 클럽, 이런 걸 만들고 활동을 했었는데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파산의 문턱이 높아지니까 파산이 안 되고, 채권은 계속 유동화 돼서 거래되고 하는 상황들이 지속됐죠. 그런 과정에서 이 문제가 누적이 됐어요. 민원 접수 되는 것들도 보면 잊고 지낸 10년 된 빚에 대해서도 갑자기 대부업체에서 연락이 온다는 내용들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나 들여다봤더니 소멸시효 지난 것도 살려서 편법으로 추심을 하고 있더라고요. 심각성을 느꼈죠. 저희가 파산을 도와드리려고 해도 이미 제도는 파산 문턱이 너무 높아진 상태여서 안 됐어요. 힘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제도개선 운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모든 시민운동이란 게 제도개선 운동 과정에서는 문제 해결 방법이 없잖아요. 개선 운동하는 사이 신음하는 사람은 여전히 신음하고요. 두 방향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동시에 지자체에 상담 센터를 만들게 됐어요.
책에 담은 사례들이 그 상담을 통해 발견된 것들이었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예전에 캠페인을 했었는데요. 채무자 사연이 너무 많이 접수되니까 저희 쪽에 위탁을 줬어요. 상담을 해달라고요. 2년 전인데요. 그때 내용들도 많아요. 답장 쓰느라 정말 고생했어요.(웃음) 그 과정에서 그 많은 편지들을 쭉 읽는데 공통된 내용들이 있었어요. 책에 공통된 내용이라고 소개한 것들이 다 그 편지에서 뽑은 단어들이에요. 하나같이 죽을 것 같은 심리 상태에 대한 하소연이었어요. 그냥 ‘사는 게 어렵다’ 정도가 아니라 ‘숨도 못 쉬겠다’, ‘전화가 너무 공포스럽다’는 내용들이니까요.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지는 거죠.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너무 공포에 빠져있죠. 오랫동안 추심을 당하면서 ‘네가 죄인이다’라는 식의 비난을 받아온 거예요. ‘빌렸으면 갚으셔야죠’ 이런 얘기를 하루에 몇 번 씩 여러 차례 통화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고통스러운 게 자책이잖아요.
채무자를 비난하는, 빚 진 사람이 잘못이라는 사회적인 감수성에 대해서도 지적하셨잖아요.
너무 심하죠. 얼마 전 다른 인터뷰에서도 한 얘기인데요. 솔직히 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죠. 툭하면 도덕적 해이 얘기하고요. 그게 어떻게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일인가요. 사적 계약인데 말이에요. 전 국민이 추심원 역할을 하는 셈이죠.
지금은 모든 것이 유동적인 상태다. 근대 이후 자유가 늘었지만 자유의 실체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면서 환자에게 병에 대한 책임까지 주어지는 식이다. 유동적 근대성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공포감에는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도 추가된다. 첨단 금융기법을 통해 자산 증식의 기회를 선택할 자유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금융상품의 리스크는 개인에게 되돌아간다.(77쪽)
금융의 문턱은 높아야 한다
가혹하게 이루어지는 채무자에 대한 추심을 ‘노예시장’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채권 추심에 관한 법률 등에서 금하고 있는 것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고요. 뉴스를 장식하는 빈곤층 자살 사건도 익숙해요.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금융 논리에 짓밟히고 있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권을 완전히 무시할까 싶어요. 국민행복기금도 그래요. 40만원 버는 사람에게 4만 7천 원 씩 10년 간 갚으라고 하는 거거든요. 천만 원짜리 채권을 30만원에 사놓고 말이에요. 500만 원을 전부 받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받아서 남은 돈은 은행에 준대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은행 돈 벌이 해주겠다는 거예요. 바로 정부가요. 금융 회사들은 또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9천억이라는 수익만 생각하고요. 돈을 위해서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지 생각하게 돼요.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너무 큰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거죠. 아무리 기업이고, 아무리 이윤 추구가 최우선이라고 하지만요. 애초에 금융은 제한적인 기업이어야 해요.
미국의 경우 약탈적 금융에 대한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네, 추심도 이렇게 못해요. 우리는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틈을 타서 이렇게까지 해온 거예요. 진보언론들마저 금융의 문턱이 높다, 금융 소외가 어쨌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죠. 금융의 문턱은 높아야 해요. 금융이 복지가 아니고, 금융이 제도가 아니잖아요. 그건 사업이에요.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금융에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하도록 자꾸 금융의 문턱을 낮추라고 하느냐고요. 금융은 공공이 아니라는 거죠.
말하자면, 빚을 내기가 너무 쉬운 게 큰 문제가 아닐까 해요. 무엇보다 신용카드 문제를 꼭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카드론, 수수료 등 카드사는 그야말로 불노소득을 취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러나 국가 정책은 신용카드사를 위한 것처럼 보이고요. ‘외상 거절하면 불법’인 나라가 여기에요.
카드를 쓰면 세금도 깎아주고요. 카드 안 쓰면 벌금도 매겨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어요.(웃음) 외상을 거절하면 불법이 되는 거잖아요. 완전히 우리 의식이 뭔가에 경도된 거죠. 신용 카드, 금융, 파이낸싱, 이런 것들이 마치 21세기에 굉장히 중요한,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일상의 기본인 것처럼 받아들인 거예요. 정책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그렇게 했던 거고요.
학자금 대출 이슈도 그랬어요. 왜 학자금 대출을 더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등록금이 비싸면 등록금을 내리라고 해야지 왜 대출을 더 받으라고 하나요? 신용 카드로 학자금 결제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나왔었잖아요. 미쳤냐고 했어요. 그게 됐으면요, 신용 카드사는 앉아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을 거예요. 그게 말이 되느냐고요. 그러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학비를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어요. 대학이 분할로 받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 요구를 하면 되지 왜 카드 결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카드가 복지인 줄 아는가 봐요.
카드야말로 모든 개인이 지는 채무의 첫 관문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생협에서 왜 카드로 결제를 해요? 협동조합인데 말이에요. 매일 그렇게 욕하고 다녔어요.(웃음)
카드론이 이렇게 쉬워지고, 리볼빙이라는 카드사의 대출 서비스가 나온 것이 그리 오래된 얘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언제부턴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어요.
2003년 카드 대란 때는 현금 서비스가 범람했는데요. 현금 서비스는 리스크가 컸던 거죠. 또 현금 서비스 자체가 연체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그러면 부실 자산이 되잖아요. 그게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아요. 그걸 피하는 방법이 카드론이었던 거예요. 나눠서 갚으라는 거죠. 워낙 저금리라 조달 비용도 낮은데 카드론은 금리가 높잖아요. 마진이 어마어마한 거죠. 책에 쓴 내용 일부분은 제가 2009년에 지적한 내용이에요. 보고서를 한 국회의원 보좌관실에 보내 문제제기를 해준 적이 있거든요. 비판해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고요.(웃음)
모든 분야가 그런 것 같아요. 부동산도 마찬가지로 거품이 빠져야 하는 건데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고 하죠.
다 빚이죠. 전세도 빚을 늘려주고요. 학자금도 빚을 늘려주고요. 심지어 그러고는 빚을 내라고 한 적이 없대요. 정말 우롱하는구나 생각했죠.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7월에 발표된 정책은 어쨌든 원금을 갚으라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제도가 안 바뀐 채로 입으로만 원금 갚으라 한들 소용없는 얘기죠. DTI(Debt To Income, 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 지난해 8월 60%로 완화), LTV(Loan To Value ratio,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가능 한도, 지난해 8월 70%로 완화)를 줄이든가 했어야죠. 소득의 60%까지 이자비용을 충당할 만큼 빚을 내서 쓰라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금 갚으세요, 라니 너무하는 거죠.
TV만 틀면 나오는 대부업체 광고도 문제입니다. 점점 가면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잖아요. 최근 규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광고는 쏟아지고 있어요.
법률은 통과됐지만 시행이 아직 안 되고 있어요. CJ가 정말 문제예요. 대기업이 법까지 통과된 마당에 법률이 시행되기 하루 전까지 대부업 광고로 돈을 벌겠다는 것 아니에요. 저축은행은 대부업과 다른 줄 아는데요. 심지어 OK저축은행은 러시앤캐시 거예요. 저희 집에는 TV가 없어요. 그랬더니 정말 좋은 게 광고를 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음식점이나 가면 광고 트렌드를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나요.
심지어 어린이 채널에도 그런 류의 광고가 계속 나왔었잖아요.
지금 어린이 채널에서 대부업 광고는 안 하는데요. 보험 광고는 해요. 화폐가 날아다니는 것은 똑같은 거죠.
약탈적 금융
제1금융권, 그러니까 은행의 추심 자회사 설립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어요. 돈이 된다는 얘기일 텐데 그것이 서민 경제를 죽이고 있는데요. 유암코를 비롯한 은행권의 부실 채권 매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려요.
추심 회사도 있고, AMC 같이 채권을 사들이는 회사도 있어요. 유암코도 그렇고요. 대신F&I도 그렇죠. 대신F&I는 원래 우리은행 거였어요. 유암코는 6개 시중 은행이 합자해서 만든 거고요. 점잖은 척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약탈적이고 야만적이죠. 유암코는 심지어 계열사로 대부업체도 운영하고 있어요. 유암코는 담보 채권만 하는데요. 우리는 담보대출이라고 해도 담보물을 처분하고 나서 빚이 남으면 또 추심 당하잖아요. 미국은 안 그래요. 담보대출은 딱 열쇠 던지면 끝이에요. 계약의 주체는 집이고, 사람에 대한 채권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 있는 셈이죠. 일단 담보 처분하고 남은 채권은 그러면 무담보가 되는 거잖아요. 담보가 처분 됐으니까요. 그런데 빚이 천만 원이 남았다고 하면 천만 원짜리 무담보 채권이 돼서 유암코, 자기네가 만든 대부업체가 또 팔아요. 그걸 또 다시 추심하는 거죠.
담보물은 담보물대로, 빚은 빚대로 다 갚아야 한다는 게 우리 상식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 있다, 당황스럽네요.
사례가 또 하나 있는데요. 어떤 분에게 빚이 6억이 남았는데, 집의 가치가 원래 8억이었대요. 그걸 추심업체가 가져가서 5억에 경매를 한 거예요. 1억이 아직 남았죠? 거기다가 경매할 때 들어간 법정 비용, 연체 이자까지 다 합쳐서 총 잔존 채무가 1억 8~9천정도가 됐대요. 이분이 개인 회생을 했죠. 그렇게 해서 또 일부 갚았는데, 나머지를 배우자에게 지운 거예요. 이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버는 거예요.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아니고요,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거예요. 망한 사람들을 상대로 말이죠. 배우자 연대보증 건은 다 소급해서 없애야 해요.
‘빚 못 갚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아예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도덕적 해이 얘기하는데요. 오히려 부자들은 안 갚아요. 법무법인들 보세요. 빚 탕감해준다는 현수막을 다들 내걸고 있잖아요. 변호사에게 돈만 주면 다 파산, 면책 해줘요. 가난한 사람들만 죽으라는 소리죠. 도덕적 해이를 어디에다 갖다 대는 건지 모르겠어요. 빚 안 갚는 건 가능해요. 돈이 있어야 가능하죠. 기업이나 서민들은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요. 망하면 수입이 중단되잖아요.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자영업자들, 기업하는 사람들, 한 번 망하면 재기가 안 돼요.
파산 신청은 권리예요. 그걸 떼어먹는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진국의 경우 빚을 갚기 어려워졌을 때, 채무자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채권채무계약을 다시 하는 것이 의무예요. 이자도 깎아주고, 상황 기간도 늘려주고요.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거나 말이죠. 실직했는데 어떻게 갚아요? 그러면 다시 언제 직장을 구할 건지, 다 조정해서 계약하게 되어 있어요. 채권 매도도 못해요. 매도 허가가 잘 안 나죠. 그런 걸 하냐고요. 우리나라는 전혀 없죠. 안 해요.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한 재계약이란 아주 중요한 제도 개선 포인트 같네요.
기한이익상실이라고 있어요. 한마디로 채무자의 채권에 관한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하는 건데요. 그걸 바로 때려요. 두 달 연체하면 끝이죠. 선진국은 그게 불가능해요. 그렇지 않아요.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은행 자체에 있어요.
은행 스스로 제도를 구축하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결국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 자활 정책, 복지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화, 방문 추심 다 금지시켜야 해요. 서류로만 하도록 해야죠. 금감원에서 추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발표해요. 법이 추상적이기 때문인데요.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를 보세요. 뭐가 반복적인지(웃음) 알 수 없잖아요. 매일하면 반복 아닌가요? 그런데 하루 세 번까지는 반복이 아니래요. 그게 가이드라인이에요. 금감원의 감독 대상은 금융 회사들이니까 이 가이드라인은 금융 회사한테만 유효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얘기를 했죠. 서울시가 대부업체 추심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요. 대부업체 관리 권한은 서울시나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으니까요. ‘한 통이라도 매일 전화하는 것은 반복’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거죠. 일주일 총량을 규제하든가 하는 식으로 제한할 수 있죠.
이번에 소멸시효 지난 부실채권에 대해 금감원에서 거래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어요. 그건 금융회사만 해당 되거든요. 대부업체에 소멸시효 지난 부실채권은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라고 제안 했어요. 소멸시효 끝난 채권 거래 불가, 금감원 가이드라인에 준해 대부업체도 관리감독 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이죠. 그런 식으로 자꾸 관리 감독을 해나가야죠.
서울시가 나서서 개선책을 고민한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긴 한데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여요.
갈 길이 멀죠. 하지만 여론의 방향이 바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여론이 움직이면 정부도 안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거죠.(웃음) 계속 부실채권 시장 파보기로 언론에서도 가야 해요. 채권 시장을 계속 건드리고, 금융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얘기해줘야죠. 제도는 금방 바꿀 수 있어요.
서민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아니라 복지
계속 ‘이것이 잘못된 방향이다’라는 얘기를 해야 할 텐데,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세요? 주빌리 은행의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11대 국회가 끝나가고 있어서 입법은 거의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해요. 다음 국회 때 정무위 의원들 몇 분을 모시고 ‘빚 땡처리 방지법’처럼 자극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하려고 해요. 유동화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땡처리해서 개인의 인권을 다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 사고 팔리는 건 문제라는 걸 말하려고 해요. 내년 4월 이후가 되겠죠. 그런 생각이 좀 있고요. 또 경기도에서 저희 주빌리 은행과 같이 하고 있어요. 여야 상관없이 저희와 함께 하는 분들이 인기인이 되도록 만들어야죠.(웃음)
부실채권 시장에 대해 사람들이 몰랐던 거잖아요. 은행만 한 해 9조원 규모예요. 작은 규모가 아닌데 몰라요. 얼마 전에 대부업체에 기부를 받아서 37억을 소각했는데요. 2천 명의 빚이 탕감됐어요. 평균 빚이 3백만 원 정도인데 이자가 빚의 다섯 배예요. 정말 화가 나요.
대부업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금맥이네요. 하나만 제대로 추심해도 몇 십만 원에 산 채권에서 몇 천만 원을 받아낼 수 있잖아요.
추심원은 게다가 고용도 안 해요. 실적제거든요. 개인사업자로, 보험설계사처럼 계약을 하는 거죠.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버는 거죠. 주빌리 은행이 잘 돼야 해요.(웃음) 돈을 갚아주시는 것으로 또 채권을 사면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모델이에요. 채무자의 돈으로 다른 채무자를 구제하는 거니까요.
주빌리 은행이 그라민 은행과 같은 모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에요. 빌린 돈의 채권을 저희가 사서 없애주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정부의 서민 금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서민 금융이란 말도 하지 말자고 했어요. 기만적인 용어예요. 서민에게 필요한 건 복지지 금융이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꾸 금융 회사에 소비하라고 하는 거잖아요.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것을 마치 공공성인 것처럼 금융 소외니,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복지를 말해야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모피가 필요한 게 아니고 외투가 필요한 거예요. 금융에 대해 진짜 다시 생각해야 돼요. 은행도 개인이 그렇게 돈 안 갚는 게 힘들면 빌려주지 않으면 돼요. 부실한 투자자인 게 뻔한데 왜 그렇게 돈을 빌려줘요? 기업들 쫓아다니면서 건강한 금융 운동을 해야죠. 『보노보 은행』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진짜 좋은 금융 사례들이 많아요. 금융은 그렇게 가야 해요. 좋은 사업을 발굴해서 투자도 하고, 경영도 지원해주고요. 그렇게 해서 일자리도 창출하고 그래야 해요. 이번 기회에 그런 인식이 많이 확산되기를 바라요.
은행이 사회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기능을 하는 곳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우리는 은행도 너무 독점이에요. 지점이 많잖아요. 그게 한 마디로 골목상권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메가 뱅크가 필요한 게 아니고 로컬 뱅크가 필요하거든요. 지역적으로 작은 은행들이 많이 있어야 해요. 진짜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 로컬 뱅크가 많이 생겨야 해요. 그래야 지역 사업 발굴도 하고요. 지금은 다 독점하고 있는 형태예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은 다 로컬이에요. 금융은 원래 덩치가 커지만 관리가 안 돼요. 작아야 관리가 잘 돼요. 2008년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미국 금융 위기 때 벌어진 운동이 계좌 옮기기 운동이었어요. 작은 지역 로컬 뱅크로 계좌를 옮기자는 운동이었어요. 공룡 회사를 혼내주자는 운동이 있었죠. 미국은 우리에 비하면 덜 야만적인 거예요. 그때 잠깐 부실채권 판매를 광범위하게 허용했었어요. 그걸로 욕을 엄청 많이 먹었고, 2012년에 주빌리 운동을 한 거예요. 우리는 그게 일상인데 말이에요.(웃음) 창피한 일이죠.
근본적인 채무자 구제 방안으로 채권자 참여 배제, 개인파산, 면책과 더불어 심리상담 지원 등을 꼽으셨어요.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제가 보기에 장기간에 걸쳐 추심에 노출된 사람들은 거의 병이 난 사람들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뭘 할 수 있는 여력이 없고,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에요. 방 한 칸에 일곱 식구가 살아요. 번듯한 매장을 운영하던 분이었는데, 눈을 못 마주치더라고요. 너무 위축되어 있고요. 영혼에 상처가 났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를 통해 채무를 털어버린 분의 말에 따르면 발이 땅에 안 닿는 것 같대요. 전화기를 보는 마음이 반갑고요. 그래서 저희 상담사들이 무척 헌신적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니까요. 정말 보람 있죠. 한 상담사 분은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신 분이 있어요. 처음에는 엄청 반발을 많이 했어요.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면서요. 교육하는 내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은 파산 실적 1위예요.(웃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시죠. 없는 돈인데 단팥빵 사오시면 정말, 감동이죠. 저희가 채권을 사서 없애는 빚보다 상담 센터에서 없애는 빚이 훨씬 많아요. 참 감사하죠. 서울시에 이 상담 센터를 정말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3년 째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제는 좋은 모델이 됐어요.
채널예스24 기사원문 : http://ch.yes24.com/Article/View/29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