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Home.칼럼.주빌리칼럼.[스토리펀딩] 6화, ‘빚 갚으란 편지’ 받은 초등학생 남매

[스토리펀딩] 6화, ‘빚 갚으란 편지’ 받은 초등학생 남매

‘빚을 못 갚는 사람에 대해 저도 한 때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죠. 그러나 채무자들을 만나보고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빚을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봐야죠.’

서울시 금융복지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하는 어느 상담원의 말이다. 그는 평생을 은행원으로 살다가 지점장까지 역임한 뒤 퇴직을 했다.

그에게 세상은 온실이었다. 적당한 양의 햇빛과 물과 거름만 주어진다면 모든 화초는 예외없이 잘 자란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세상은 그에게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온실 같은 곳이었다.

가난한 것은 안타깝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일 뿐,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또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주어진 당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는 넉넉한 퇴직금을 갖고 은퇴를 했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적당한 양의 햇빛과 물과 거름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새잎이 돋고 열매 맺고 꽃을 피우는 인생이 얼마나 갚진 것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력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채무자들을 상담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그는 자신이 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아픈 세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최근 초등학생 아이들이 파산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미성년자의 파산 면책 지원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 번에는 중학생 고등학생의 파산 면책을 지원했다. 모두 부모의 빚이 상속된 안타까운 경우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법원의 파산 면책 기록을 갖게된 이주연(가명)군과 이성하양의 아버지는 주연군이 3살, 성하양이 7살 때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어머니는 한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아버지는 가축관리사로 열심히 일했지만 아이둘과 장애인 아내를 돌보는 데 충분한 돈을 벌지 못했다.

이 아이들의 어머니는 결혼전에는 장애인 공단의 도움으로 임금이 낮기는 하지만 사무직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 둘을 출산 한 이후 몸이 더욱 약해져 걷거나 서있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일을 할 형편이 아니다.

남편은 여러 군데의 카드사에 빚을 남겨 놓았다. 물론 그 이전부터 아이들의 어머니는 카드사들로부터 빚독촉을 자주 받아 왔다. 그러나 그 때는 남편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어렵게 어렵게 해결해 가며 살았다.

남편이 사망한 후 동사무소를 찾아 기초생활 수급자 지정을 받아 생활비는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빚은 해결이 안된채 7년간 독촉이 이어졌다. 부채 원금은 1100여만 원이었는데 연체 이자까지 붙어서 4500만 원에 대한 빚이 아내와 초등학생 아이 둘 모두에게 상속되었다.

학력이 높고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여기저기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상속 포기라는 절차를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 여성이 그런 법적 절차를 알 리도 없었고 알아볼 방법도 전무했다. 그저 법이란 것은 높고 무서운 담벼락 같은 것이어서 한번 갇히면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러던 차에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로부터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소개받았다. 다행히 상담센터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아이둘과 함께 힘든 몸을 이끌고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세상이 온실같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막 확인한, 채무자들이 행여 자살이라도 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상담사를 만난 것이다.

상담사는 오른 쪽 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초등학교 1학년 5학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위해 대신 진술서를 작성하고 법원의 파산 면책 신청서를 만들었다.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찬찬히 들을 수 밖에 없던 이 세 가족의 이야기는 눈물을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로 먹먹한 것이었다.

 02_진술서 및 파산 면책 신청서1

04_파산 관련 서류_채권자목록

03_경위서

“내 이름으로 오는 편지를 보면 반가웠어요”

“그런데 저에게 빚을 갚으라고 보낸 편지라는 것은 몰랐어요. 아빠가 빚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아 엄마가 힘들어 해요. 엄마는 제가 태권도를 하는데 ‘엄마가 없을 때는 누나가 엄마대신이라며 누나 말 잘 들으라 누나와 너를 방어하기 위해서 배우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저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인격을 갖추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누나만큼만 하라고도 합니다. 저는 한자가 재미있어서 한자학습지를 하는데 8급자격증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축구선수가 꿈인데, 저의 꿈을 이루어 제가 엄마도 누나도 지킬 수 있도록 판사님께서 저를 도와주세요.
아마 이 아이는 판사님께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채무 면책 과정이 야만적인 금융 환경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 그냥 마치 처음부터 그래야 한다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어른들만이 아는 이야기이고 어른들이 하라면 해야 하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천진한 글 속에는 수치스러움이나 살을 애는 듯한 마음의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래서 더욱 이 아이의 글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초등학생 5학년인 성하양의 글은 주연군과 달리 한 뼘 정도의 슬픈 감정과 엄마에 대한 연민이 베어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소녀가 아버지의 빚을 물려 받는 바람에 법원에 가서 가난이 주는 불편을 이야기하면서 선처를 호소한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저는 엄마에게 통장에 저축을 하고 싶다고 하였는데, 핸드폰도 중고폰 말고 새것으로 갖고 싶다고 하였는데 ‘엄마와 아빠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저축을 못하고 핸드폰도 새것으로는 개통을 못해..미안해!’라고 하셨어요.

아빠엄마의 잘못이라는 것이 빚 때문에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빚이 저희에게 상속이 되어 동생과 저의 이름으로 편지가 온 것을 봤어요. 엄마는 우리가 말을 잘 안들으면 힘들어 해요. 엄마가 건강해서 오랫동안 저희랑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께서 우리를 키우는데 힘들어하지 않게 판사님께서 도와주세요.”

아마 빚은 어떤 식으로든 갚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주연군이 한자 학습지를 하고 태권도장에 다니는 것 조차 불편하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돈을 빌려 갚지 못하는 가족이 할 것 다 하고 사네’라고 비정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세금으로 생활비를 의존해 사는 이 가족이 태권도장을 다니고 학습지를 하며 중고폰일 지언정 핸드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도덕적 해이’의 실태라고 꼬집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혹은 아이들을 굳이 법원까지 데리고 가서 파산 면책을 시켜야 하는가라고 이 아이들의 어머니를 탓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살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채권자들이 이 가여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상환 능력 범위를 뛰어넘는 과잉 대출이었다. 물론 낮은 소득으로 장애인 아내와 아이 둘에게 부족한 생활비를 해결하도록 도운 것이 카드사였기 때문에 고마워 해야 한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들에게 카드빚과 대출은 필요 없었다”

더 좋은 일자리와 3만원에 불과한 장애수당보다 좀더 실질적인 사회 안전망이 절실했다. 카드사와 저축은행은 이들에게 인심을 쓰느라 돈을 빌려준 것도 아니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최대 30%에 육박하는 고금리를 챙기는 2금융권 대출은 저소득층에게 약탈적인 대출일 뿐이다. 신용도를 꼼꼼히 평가해 책임대출을 해야 할 채권자로서의 의무는 져버린 채 오늘도 문자로 고객님 고객님을 외치며 돈 빌려쓰라고 아우성이다.

상환능력 이상을 빌려주면 되돌려 받지 못한다는 징벌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에서 금융사들은 편안하게 무책임한 대출 영업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가여운 사람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가혹하게 추심한다. 심지어 빚을 갚지 못해 사망한 사람의 빚을 그의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덫 씌워 초등학생 시절부터 법원 기록을 갖도록 만든다.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묻는 사람들의 손가락은 금융사들에게 향해져야 마땅하다.
다행히 이 가족은 ‘사람은 살리고 봐야죠’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상담해주는 곳을 찾았고 새출발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시의 금융복지 상담센터는 지난 2013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 15개월간 321명의 파산 면책을 도왔다. 면책된 부채의 총 규모는 580억 원에 달한다. 물론 지금은 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채무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고 성남시에도 금융복지 상담센터가 개설되었다.

서울시에 면책 상담을 신청한 사람들의 83%가 무직이거나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그들의 평균 소득은 46만 원이었고 평균 부채 액수는 연체 이자까지 불어나 1억 원이 넘는 상태였다.

이들이 센터에 신청 한 후 파산 면책을 받을 때까지 3개월 가량이 소요되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파산 면책을 하는 기간이 1년 가까이 소요된다는 점과 비교해 매우 신속한 절차였다.

이들 중 상당수가 다시 빚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임대 주택 입주 혹은 생계비 보조, 일자리 지원 등의 복지 혜택을 받게 되었다. 기존의 기초생활 수급자들은 더 이상의 추가 복지는 어려웠지만 세금으로 지급되는 최저 생계비를 쪼개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갖다 바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2011년부터 좋은 하인 만들기(make good money)캠페인을 진행 중인 캐나다의 밴시티라는 신용협동조합은 ‘돈은 사람에게 투자해야’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자 수입을 벌기 위해 금융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융업을 한다.

빚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이제 우리도 금융회사에는 면죄부를 주고 사람만 탓하는 것이 아닌, 사람은 살리고 금융회사에는 책임을 묻는 금융시민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Comments

2017-06-13T16:51:54+09:00 2015.04.09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