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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왜빚] 7화. 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있다 1

20년만에 만난 엄마 │

* 30대 초반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 인터뷰 내용을 일기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일기는 청년이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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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2일

스무살이 오고야 말았다. 일주일 뒤에 이 고아원을 나가야한다. 여기에 살면서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 눈물도 잘 안 난다. 후련하면서도 앞이 깜깜하다. 당장 지낼 집도, 가족도 없다. 만약 7살 때 새엄마가 나를 이 곳에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못살게 굴지 않았다면…

장학금이 원래대로 나왔으면 대학 기숙사에서 살 수 있었을텐데 장학금을 주기로 했던 데서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면접까지 붙어놨는데… 내가 무슨 대학이냐. 돈이나 벌어야지. 숙식이 되는 회사를 찾아봐야겠다. 내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2005년 4월 27일

조선소 일은 전부 새롭지만 밥도 주고, 잠잘 곳도 있고, 월급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곧 아빠와 같이 살수 있다는 거다. 아빠가 조선소 가까이에서 살고 계셨을 줄 꿈에도 몰랐다. 이제 나에게도 가족이 있다.

 

2005년 5월 29일

장례식이 끝났다. 이 거짓말 같은 일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빠를 만난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아직 아빠와 나누지 못한 이야기가 많은데. 고혈압 때문에 어지러워하시던 아빠는 배달일을 하시다 전봇대에 부딪히셨다. 나는 다시 조선소 기숙사로, 다시 가족이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2009년 3월 16일

드디어 차가 생겼다. 중고차에 36개월 할부지만 이 정도는 내 월급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이제 휴일에 바다도 보러 가고 스트레스도 풀면서 살아야지.

 

2010년 6월 2일

SNS는 무섭다. 한참 수소문해서 엄마가 미국에 계시다는 걸 알았다. 20년 전에 미국으로 가셨다고 한다. 내가 고아원으로 가게 된데 엄마 잘못은 없다. 엄마를 모시고 와서 한국에서 함께 살고 싶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회사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집에 갔지만 나만 몇 년째 추석이고 설이고 기숙사에 남아있었다. 이제 나에게도 돌아갈 집이 생긴다. 퇴근하면 엄마 밥을 먹고, 주말엔 같이 티비 봐야지.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었다. 갈 때는 한 명, 올 때는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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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4일

20년 만에 만난 엄마는 누워 계셨다. 당장 수술비가 필요하다. 미국은 병원비가 더 비싼 것 같다. 모아둔 돈에다가 딱 천만원만 더 있으면 된다. 빨리 돈을 구해야 한다. 엄마까지 떠나보낼 순 없다. 빨리…

 

2010년 6월 21일

다행히 돈을 빌렸다. 중고차를 사두길 잘했다.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쳐준다는 곳을 검색해서 부산의 어느 까페로 갔다. 뿔테 안경을 쓴 사람에게 차를 담보로 800만원을 빌렸다. 서류는 필요없고 각서 하나만 써주면 된다고 했다. 이제 이 돈으로 어머니 수술을 시켜드리고 한국으로 모시고 올 것이다. 세 달만 바짝 일해서 돈을 갚고 차를 찾아오면 된다.

 

2010년 8월 16일

두 달 내내 잔업을 뛰어서 600만원 가까이 모았다. 뿔테 안경에게 전화를 해서 다음 달에 차를 가지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남은 한 달동안 200만원만 더 벌면 된다. 조금만 더 힘내자.

 

2010년 9월 25일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뿔테 안경의 번호가 없는 번호란다. 업체 이름도, 사무실 주소도 모른다. 너무 어이가 없고 분해서 손이 떨린다. 신고를 해야되나 아는 경찰 형한테 물어보니까 대포차가 되면 나한테도 벌금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벌금이 얼마나 나올지… 겁이 난다. 좀 더 생각해보고 신고를 해야겠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중고차 할부는 2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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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0일

더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하루에 40통씩 걸려오는 독촉 전화와 서류.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전화를 껐더니 이제는 친척과 회사에까지 전화를 해서 자동차 할부금을 갚으라고 한다. 회사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맘편히 일할 수가 없다. 수백번 참았지만 이제는 한계가 온다. 내일은 사표를 낼 용기가 날 것 같다.

 

*뒤 편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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