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며 서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가 깊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유호영 기자]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요식업계에 있는 동안 여러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 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코로나사태로 서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자금난에 경제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며 주저앉고 있다.
수요심리 위축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사소한 고정비 지출마저도 부담으로 느끼는 소상공인부터 정부지원대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들까지 너나할것 없이 아우성 치고 있다.
실효적인 지원방안을 담은 대책이 더 이상 미뤄지면 안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통해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조치를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붕괴직전인 서민, 소상공인들의 자생기반을 막아낼 수 있을까.
사당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하루 하루가 너무 힘들다. 어제만 해도 손질한 닭을 전부 폐기처분 했다. 판매비 기준으로 150만원은 손해본 셈”이라며 “코로나 사태 이후로 매출이 절반 이하로 줄었는데 이런 최악의 상황도 다른 곳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2월말에 바로 앞의 가게가 폐업하는 걸 두 눈으로 봤다. 가게에 파리만 날리는데도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더라. 근근히 사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결국 폐업을 선택하게 돼 씁쓸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A씨는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위해 지원대책을 내놓았지만 전부 대출을 늘려주거나 대출원금상환을 유예해주는 식이더라. 이미 대출이 있는 업주들이 기존 대출에 대한 상환도 어려워하는 마당에 똑같은 정책만 재탕삼탕하는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발표된 비상금융조치에는 대출금 원금 상환 유예는 물론, 정부가 보증하는 1.5% 저리 대출도 있었다. 문제는 한시가 급한 이들에게 즉각 시행될지 여부다.
A씨처럼 이중 타격을 입은 소상공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다. A씨는 지난해까지 일식당을 운영하다가 ‘일본불매운동’으로 매출이 감소하자 한식으로 업종변경을 했고 이때 들어가는 비용을 은행 대출로 막았다.
그는 “업종을 변경하고 어느정도 매출이 회복돼 숨통이 트일만 했는데 코로나사태가 터져버려 대출금을 갚을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며 “월세만 간신히 내면서 유지만 하고 있다. 나보다 더 심각한 가게가 많은데 줄줄이 폐업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사태로 공포감과 소비심리가 악화 등으로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경영악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4월부터 채무상담 자영업자 크게 늘듯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지금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고정 경비 지출 부분이다.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이미 대출을 받은 사업체는 많은 상태”라며 “상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해준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빌리은행은 대출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채무상담을 지원하는 단체다.
주빌리은행은 “아직까지 채무불이행을 호소하는 업주들이 크게 늘지 않았지만 코로나 여파가 3개월정도 지난 4월 경부터 상담이 급증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대출지원 대상조차 포함되지 않는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서민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4대보험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용직 근로자나 아르바이트생, 정기적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 영세 사업체에 속한 계약직들, 115만명에 달하는 실업자들은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아무런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한 상태다.
비정규직·실업자들 지원받을 곳이 없다
아르바이트 두개를 병행하며 학비를 모으고 있던 대학생 B씨는 “2월 말 사장님이 ‘너무 미안하지만 본인 사정도 생각해달라’며 그만 나오라고 했을때 정말 서글펐다. 1년 동안 친딸처럼 챙겨주시던 분이었기에 ‘오죽 힘들었으면 이렇게 부탁을 하실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하나 남아있는 술집알바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 몇주째 조기퇴근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미안한 마음에 아직 일을 그만두라는 말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자영업자들의 경영악화가 직원해고로 이어져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취약계층의 자금난도 심각한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방에서 서울로 와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B씨는 일자리가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학비는 고사하고 당장의 월세비라도 낼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다.
대학가 근처에서 술집을 운영 중인 C씨는 “알바수요가 많은 방학중에도 구인광고를 내면 하루에 많아봐야 4명 정도가 지원했는데 지난주 올렸던 공고에 14명이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막힌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영악화가 그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취약계층에까지 파급되고 있는 모습이다.
당장 11조 7000억원로 편성된 ‘추가경정예산’, 기존 코로나 사태 대책에 필요한 자금까지 포함하면 총31조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가계경제, 민생경제에 직접 지원되는 건 많지 않다.
기존에 대출연체금이 있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사업체는 대출을 신청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부분은 가게에선 사장이지만 밖에 나가면 서민이다. 소상공인들이 취약계층 고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만큼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자 무이자대출 상품 출시 ▲대출심사 과정 대폭 축소 ▲아르바이트 및 직원 채용 및 유지시 고용지원금 확대 ▲코로나사태 피해기간 내 한시적 세금 감면 등의 직접적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장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무이자가 무리하다면, 정부가 저금리 상품이라도 출시해 소상공인들의 채무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며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대출 상품이 소상공인으로 등록한 업체만을 대상으로 한다. 연로한 시장상인들이나 영세업체 사업자들 중엔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에 심사과정 간소화로 즉시 대출이 가능케 해야한다”고 말했다. 19일 청와대 조치에는 저금리 대출상품은 제시됐으나 대출심사 과정 간소화도 추가로 준비되어야 할 부분이다.
일용직, 프리랜서, 계약직등 비정규직을 위한 고용지원금 확대가 당장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상인연합회 관계자는 “같이 일하고 싶어도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어쩔수 없이 함께 있던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용지원금이 확대되면 사업주 중에선 피해를 다소 감수하고라도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지원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부처 관계자도 “직접 지원에 대한 요청을 하루에도 몇번씩 듣고 있다. 관계부처 나름대로 대책을 만들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은게 사실이다”라며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에 소상공인과 소외계층 등에게 ‘긴급재난수당’과 같은 현금지원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불법고금리 대출에 몰린 한계차주, 3금융으로 돌릴 수 있다면
1,2금융권에 이어 3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대부업체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1,2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차주의 대출시장규모는 지하경제까지 포함할 경우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중 17조원 안팎에 합법적인, 즉 등록된 대부업체를 통해서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 이들 합법적 대부업체들은 법정 이자상한선은 연 24%를 지켜야한다. 그러나 나머지 30조원에서 17조원을 뺀 규모인 13조원 정도는 불법대부업체나 개인사채 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대부업 관계자는 “13조원에 이르는 비합법적인 대출은 대부분 연이자가 100%를 넘는 초고금리 대출”이라며 “추가 담보가 없거나 이미 최대한 대출을 받은 한계차주들이 대부업체를 이용하지 못한채 불법 대출시장에 몰려 있는 만큼 이들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대부업, 저축은행, 캐피탈 등 2, 3금융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면 현재의 무거운 채무부담을 벗어나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이자상한을 정한 법을 고치지 않고, 예외규정을 활용해 추가로 대출해줄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면 적어도 100%이상 연이자를 내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1,2금융권에서 대부업에 한시적으로 자금지원을 하도록 감독당국이 창구지도만 해도 쉽게 시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호영 기자youhoyoung7@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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