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연좌제’..연대보증 선 친인척 빚더미 앉아
“채무상환능력 없는 연대보증인 대상 채권 일부 상각 등 필요”
[OK!제보] “남편 보증 섰다가 20년째 통장개설도 못 해”..족쇄된 연대보증
[※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서울 주민 A(54)씨 등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경 인턴기자 = #1. 주부 A씨(54)는 약 20년 전 중공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을 위해 대출 연대보증을 섰다가 남편 회사가 금융상품 관련 손실로 350억원가량 손실을 보자 신용불량자가 됐다.
남편은 오랜 기간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신용등급을 많이 회복했지만 세 자녀를 키우느라 회생절차를 거치지 못한 A씨는 20억원가량 연대보증 채권이 남았다. 이 때문에 A씨는 본인 명의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없는 실정이다.
#2. 의대를 다니던 B씨는 15년 전 사업가인 장인이 대출 보증을 요구해 보증서에 서명했다.
이후 장인 사업이 실패하자 보증인은 직계가족이 아닌 B씨가 됐다. 신용불량자가 된 처남이 연락 두절됐기 때문이다.
B씨는 의사가 된 뒤 채무를 상환하며 지내다 최근 아파트를 샀지만 이를 파악한 위탁 추심회사가 강제 경매를 진행하려 해 월급과 아파트 모두 압류당할 위기에 처했다.
◇ “투명인간 된 기분…평생 신용불량자 신세”
‘현대판 연좌제’라 불리는 연대보증제도는 채무자가 금융기관에서 대출할 때 빚을 갚지 못할 경우 대신 갚을 이를 지정하도록 한 제도다.
기업 경영과 관련 없는 제3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주는 등 폐해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13년 7월 금융기관 신규 연대보증이 폐지된 지 7년이 흘렀지만 제도 폐지 이전에 보증을 선 이들 중 일부는 신용불량자가 돼 고통받고 있다.
이태규 국민의당(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8년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증을 섰다가 10년 넘게 남의 빚을 떠안은 제3자 연대보증인은 1만5천명을 넘었다. 이들의 구상권 잔액은 2조1천여억원에 달했다.
제3자 연대보증인들은 상환능력이 사실상 결여돼 장기간 채무를 갚지 못하는 이들만이라도 채권을 소각해달라고 주장한다.
A씨는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연대보증은 형제나 부모·자식 간에도 어려워 사업하는 남편들은 연대보증인으로 아내를 주로 내세웠고 금융권에서도 이를 당연시 여겼다”며 “경제활동을 하기도 어려운데 20억대 연대보증 채권을 내가 무슨 수로 갚냐. 평생 투명인간처럼 살라는 건지 묻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 “장기간 취약계층 한해 채무 탕감 검토해야”
청년 시절 부모님 요구에 따라 보증을 섰다가 30~40대에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다 50대에 접어든 이들도 많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연대보증제도 폐지 이전에 연대보증을 선 이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신용보증기금 보증제도팀 관계자는 “연대보증 폐지 이전에 부실이 난 경우에는 구상권이 발생한다”며 “개인회생제도 등 법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이미 구상권이 발생한 사람에게 추심을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대보증인이 정상적인 근로활동을 통해 채무를 갚아나갈 수 있도록 특별 면책 같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채무자 중 10~20년간 채무를 갚지 못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채권을 소각해준 것처럼 실질적 상환 능력이 없는 연대보증 채무자에게도 채무 탕감을 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취약계층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유순덕 이사는 “연대보증인은 급여와 통장이 모두 압류되기 때문에 한창 근로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활동의 제약을 받는다”며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최소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실익이 없는 공기업 채권은 소각해줄 수 있는 면책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는 “연대보증인이 (개인회생 관련) 변호사 선임 등 법적 절차를 거치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수도권에만 집중된 금융복지상담센터 수를 전국적으로 늘려 신용불량자가 된 연대보증인의 재기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yunkyeong00@yna.co.kr
출처: https://news.v.daum.net/v/20200711060006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