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빚 탕감’ 중장년 5명의 당부
생계, 병원비 등 카드빚의 늪
채권소멸 시효는 연장 또 연장
젊을 때 빚으로 10~30년 고통
“청년 빚 다 탕감해주라는 말 아냐
재기할 수 있게 기회는 주란 뜻
사회가 청년 시간 뺏지 말았으면”
“빚을 갚지 않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해 악착같이 갚았어요. 하지만 카드사나 은행이 더 문제더라고요. 돈을 벌기 위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카드를 막 만들어준 거잖아요.”박아무개(55)씨는 청년 시절 진 빚 6000만원을 30년 만에 탕감받았다. 빚은 사라졌지만 지나버린 30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는 ‘카드’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늪에 빠뜨렸다고 생각한다. 늪의 입구에는 국가의 정책이 있었다.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정부는 소비를 늘리기 위해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1999년에는 70만원이었던 현금서비스 한도를 카드사가 자유롭게 정하도록 했다. 그 무렵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도 도입됐다. 카드 발급은 1999년 3899만장에서 2002년 1억480만장으로 2.7배 늘어났다. 박씨 역시 32살이던 1999년에 첫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길거리엔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중개인들이 넘쳤다. 박씨의 눈길을 끈 것은 제주도를 왕복할 수 있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준다는 한 카드회사 가판대였다.
1995년부터 아픈 아내 병원비로 은행에서 500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던 그는 아이엠에프 사태가 벌어진 1997년 직장을 잃었다. 다시 직장을 구한 것은 1999년. 이젠 신용카드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박씨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한 카드사 광고 문구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카드 한 장으로 30년 동안 ‘지옥’
세상에 공짜 위로는 없었다. 월급만으로 아내의 병원비와 생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박씨는 신용카드를 5~6개까지 만들어 돌려막았다. 첫 카드를 만든 지 3년 만인 2002년 빚이 6000만원 쌓였다. 그 무렵은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으로 등재된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서는 ‘카드 대란’이 일었다. 정부의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4.6장의 카드가 풀려 있었다.
박씨는 부모와 형제, 지인의 도움을 받았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연체가 시작되니 카드사와 은행이 압박을 해왔다. 궁지에 몰려 장기매매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빚을 감당할 정도의 월급을 주는 직장을 찾기 어려웠다. 결국 2000년대 후반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의 한 나라로 이민을 했다. 빚만큼은 악착같이 갚았다.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어 냉장고에 얼려둔 음식만 꺼내 먹다가 박씨는 문득 깨달았다. 빚을 갚느라 생활이 망가지는 것은 옳은 일인가. 박씨는 2010년께부터 대출을 갚는 대신 무너진 삶을 복구하는 데 집중했다.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매입해 소각하고 채무자의 채무 조정을 돕는 ‘주빌리은행’과 함께 금융기관 부채 2건을 해결했다. 원금 500만원이 1300만원으로 불어난 빚은 140만원으로, 원금 2700만원이 7000만원까지 늘어난 빚은 430만원으로 정리했다. 30년 동안의 지옥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빚을 다 탕감해주라는 게 아니에요. 경제활동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러면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의 가정이 살아날 수 있는 겁니다.” 박씨는 한국 사회가 채권자 편이라고 했다. “채권 소멸시효가 5년인데, 전자소송으로 클릭 몇번만 하면 10년씩 연장이 가능하니까요.” 금융회사들은 고령 등의 경우가 아니면 장기 연체된 대출의 소멸시효를 계속 연장해나간다.
지금의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한겨레>는 주빌리은행과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청년 시절 진 빚 때문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동안 고통받아온 40~60대 중장년 5명을 만났다. 부동산, 불안정한 일자리, 금융위기…. 그들이 빚진 이유는 지금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은 안다는 것이었다. ‘부채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 ‘사회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었을 때의 빚은 수십년을 잃어버리게 한다’…. 그리고 이들이 한결같이 당부하는 한마디. ‘빚을 지지 말라.’
26살이던 1995년 취업에 성공한 이아무개(53)씨는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그 또한 박씨처럼 ‘돌려막기’의 덫에 빠졌다. 카드빚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방법이 없어 사채를 끌어 썼다. 빚을 갚지 못하자 5~6곳의 추심원이 집에 들이닥쳤다. 산으로 데려가 삽을 주며 땅을 파라고 한 사채업자도 있었다.
부모 집으로, 형제 집으로, 친구 집으로 도망 다녔지만, 사채업자들은 귀신같이 알아냈다. 주변에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방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통장이 없어 현금을 들고 다니다 보니 돈이 모이지 않았다. 농사일을 하면 나을까 싶어 농촌으로 향했다. 이웃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통장을 대신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약점이 됐다. 사람들은 일당을 안 줘 놓고 현금으로 줬다고 우겨댔다. 통장이 없으니 이씨가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노숙을 시작해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전전하던 삶을 지난해까지 이어갔다. 살아갈 의지를 다시 품은 건 아픈 친구의 유언 같은 당부 때문이었다. “이제 재기를 해봐라.” 주민등록을 살리고 대출 상황을 알아봤다. 6000만원 정도였던 빚이 4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지금은 8년간 매달 5만5천원을 내면 빚을 탕감받는 채무 조정을 진행 중이다. “빚 때문에 기회를 잃어요. 빚 독촉이 오고 월급이 차압당하고, 그러면 회사를 못 다니죠. 밀려가다 보면 빚은 끝까지 못 갚아요.”
그는 여전히 빚은 갚아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너무 높지 않은 금리를 책정하거나 상환 기간을 대폭 연장해줘서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채무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도 신용회복위원회 같은 것이 있었다면 20년이나 허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아직도 잃어버린 기회들이 아쉽다.
“청년 부채 문제, 사회도 책임져야”
젊은 시절 빚으로 고통받았던 중·장년들은 청년과 사회 양쪽에 당부의 말을 전했다. “청년들이 빚 문제를 회피하지 말았으면 해요.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사회가 책임져줬으면 좋겠어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1억원의 빚을 졌던 임아무개(46)씨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부모 부양을 위해 대출받아 산 상가주택을 헐값에 경매로 넘기고 운영하던 가정용품 가게마저 영업이 어려워져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겪었다.
양아무개(65)씨는 5년간 준비했던 부동산 사업이 아이엠에프 사태로 망가지고, 그때 사업 비용으로 지게 된 빚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 “빚을 지면 취업도 어렵고 사회적 제약이 많아요. 청년은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투자예요. 이 사회가 빚으로 청년들의 시간을 강탈하지 않았으면 해요.” 빛나야 할 젊은 시절을 빚 때문에 잃은 이들의 마음은 같았다. 다음 세대의 청년은 자신과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기를, 그 시절에 사회가 연대의 손길을 내어주기를 바랐다.
출처: 한겨레신문 김가윤 기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8488.html?_fr=m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