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 롤링주빌리(공익은행)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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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4.11.18 14:00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상조(喪助)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 수는 864만명으로 선수금 규모는 9조 4000억원에 육박했다. 고객 수로만 따지면 국민 6명 중 1명이 상조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한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상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한 상황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상조업체는 78곳인데 최근 3년간 8개사가 폐업했다. 8개사의 누적 선수금은 2,430억원이고 반환 대상금액은 1,210억원인데 실제 반환금액은 930억원에 불과하여 약 23%에 달하는 280억은 상조서비스에 가입했던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했다.
더욱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2010년 이후 올해 4월까지 법 위반이 확인돼 등록이 취소된 상조업체 52곳 중 24곳이 선수금 예치 기준을 위반했다. 소비자들이 미리 맡긴 돈인 선수금은 상을 당하면 소비자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금으로 상조회사의 부채이다. 등록이 취소될 정도로 문제가 있던 상조업체 중 절반이 선수금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는 관리감독 부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내의 상조업체는 금융회사가 아니므로 금융감독원의 감독대상도 아니고, 자산 운용 현황 공시나 충당금 적립 등에 대한 의무도 없다. 다만, 상조 서비스가 금융상품 중 ‘선불식 할부거래 제도’로 분류돼 현행법상 선수금의 50%만 은행에 예치하면 그 외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당국이 제한할 수 없는 나머지 선수금 50%는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 결과, 업계에서는 가입자의 선수금을 빼돌려 개인 사업 자금으로 유용하거나 사채 자금을 갚는 데 사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5년간 상조회사 재무건전성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75개 상조업체 중 42개 업체(56%)가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는 자본잠식 상태로 확인됐다.
국내 상조제도의 문제점
첫째, 상조회사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국내 상조제도의 모델 격인 일본은 정부의 ‘인가’를 통하여 진입장벽이 있으나 우리는 ‘등록’만 하면 진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할부거래법 제18조).
둘째, 상조회사와 보험회사 간 ‘규제의 불균형’이다. 상조회사는 보험회사 대비 영업행위 규제가 매우 약하고 건전성 규제는 전무하다. 그 결과 국내의 상조서비스 제공 실적은 상조회사가 보험회사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다. 특히 상위권 상조회사들은 소비자가 납입한 선수금이 조 단위에 달하므로 건전성 규제가 없는 경우 대형 사고가 예견된다.
셋째, 선수금의 50%만 보전금으로 규정한 ‘법조항의 문제’이다(할부거래법 제27조 제2항). 이는 소비자의 선수금 중 50%는 보호받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며 낮은 진입장벽, 건전성 규제의 부재와 결합되어 소비자의 대규모 피해를 촉발할 우려가 크다.
주요국의 상조제도와 시사점
우리 제도의 모델 격인 일본은 상조회사의 설립 및 영업을 ‘할부판매법’이 규정하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50% 조항’ 등이 우리 ‘할부거래법’에서 규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일본의 제도가 우리와 다른 점은 설립 시 정부의 ‘인가’요건을 규정하여 ‘진입규제’를 하는 것이다. 즉, 일본은 상조회사의 설립요건을 엄격히 규정하여 상조회사의 난립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소비자피해를 예방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장례법규는 연방 장례법(Funeral Rule)과 각 주의 상조법(Pre Need Laws)으로 대별된다. 미국 상조법의 주목적은 장례지도사(funeral director)에게 장례 대금을 선납한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예컨대 뉴욕주는 선수금 100%를 소비자 명의로 신탁 예치하도록(a 100% trust, in your name) 영업행위를 규제한다. 이는 정부의 건전성 규제를 받는 금융업자를 통하여 상조 서비스 소비자를 보호하는 구조이다.
영국은 상조 서비스에 대하여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2000)을 통한 금융규제(진입규제, 영업행위규제, 건전성규제)가 직접 적용되므로 체계적인 소비자 보호가 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3개국 상조 서비스 관련 소비자보호제도는 각각 ①진입규제 방식(일본), ②영업행위규제 방식(미국), ③금융규제 방식(영국)으로 요약된다. 3개국 제도의 시사점은 각자의 사정에 따른 소비자 보호 기능을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국내의 제도는 진입규제의 부재, 영업행위규제의 부족(50%), 건전성규제의 부재로 소비자 보호가 취약한 구조이다.
국내 상조 서비스가 계(契)의 상조(相助)전통에서 유래된 것은 공감한다. 그러나 우리의 제도는 조(兆) 단위의 선수금을 관리하는 대형 상조(喪助)회사마저도 실질적인 금융규제가 없는데 이는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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