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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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4화, “빚 다 갚을 때까지 새 출발은 꿈도 꿀 수 없어”

연체자들의 어렵고 힘든 사정을 이야기하면 도덕적해이 혹은 악용하는 경우에 대한 우려가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연체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한다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거나 의도적으로 부채 상환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변호사 수임료를 부담하는데 문제가 없거나 권력을 충분히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보통 사람들을 화나게 만드는 일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채무자에 대한 환경이 어떠한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연체자들에게 삶의 존엄을 포기해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몰아부칠수록 가난한 채무자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을 경험한다. 게다가 무리하게 갚으려는 가난한 사람들의 빚은 악성화 되고 종국에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는 상태에 내몰린다.

“우리는 다른 방법과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한다”

건강한 신용사회를 뿌리내릴 좋은 길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에 대해 상상의 범주를 확장시켜야 한다.

가령 빚을 갚는데 어려움에 내몰린 채무자들에게 좀 더 인간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이 주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래? 그럼 돈 왕창 빌리고 안갚아야지’라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김으로써 신용사회가 무너질까?

“채무자 상담센터를 찾아온 한 남성”

한 남성이 매우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성남시의 채무자 상담센터를 찾아왔다. 18년전의 빚으로 느닺없이 대부업체로부터 4900만 원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7년 사업을 하는 매형이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급하게 하소연했다. 이형식(가명,40대 중반)씨는 은행에서 자신의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려 매형에게 건네주었다.

당시 외환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형의 사업은 뜻하는데로 잘 되지 않았고 결국 이형식씨가 빚을 끌어안게 되었다.

집을 처분해 빚을 갚아야 할 상황에 내몰렸고 이런 과정에서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이혼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 직후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담보 대출 1억 원은 경매로 집을 처분하고도 2000만 원의 빚이 남았으며 불가피하게 연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0년이 흐른 뒤 그 채권은 소멸시효가 지났음에도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매각되었다. 저축은행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민사소송을 제기해 채권을 다시 살려냈다. 살아난 채권을 들고 저축은행이 빚독촉을 했으나 이형식씨는 갚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6년이 흐른 뒤 그 채권이 대부업체로 되팔렸던 것이다. 오랫동안 연체 상태에서 신용불량의 딱지를 안고 추심을 피하느라 주소지도 연락처도 늘 불안정한, 사실상의 사회 퇴출자 신분처럼 살아왔다.

최근에야 비로소 신용불량의 기록도 삭제되고 제대로된 경제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통장도 만들고 신용카드도 새롭게 발급받았다.

그러던 차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은 마치 빚을 갚을 때까지 아무리 숨어봐야 소용없고 새출발은 꿈도 꾸지 말라는 최후통첩같이 소름끼쳤다.

“다 갚을 때까지 새출발은 꿈도 꾸지 말라”

마침 이형식씨는 성남시에서 채무자들을 위해 상담센터가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정부나 지자체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순전히 생색내기일 뿐이라는 불신이 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센터를 찾았다.

당장 4900만 원이라는 목돈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 돈에 대해 다시 추심이 들어올 것이 불안해 그냥 잠적해 버릴까 싶은 마음만 들었던 차였다.

성남시나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금융복지 상담센터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 채무자 우호적인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지난 해 빚에 허덕이는 기초생활 수급자 400여 명의 빚 500억 원 가량을 면책 받도록 도왔다.

기초생활 수급자는 세금으로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들이 생계비를 쪼개 빚을 갚는 것은 사실상 세금으로 금융회사 혹은 대부업체 빚을 갚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파산 면책은 사회적으로도 정당하다.

상담센터에 사연을 접수한 뒤, 죽거나 사라지는 것 외에 해결책이 없을 것만 같았던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상담사는 이형식씨 사연을 듣자마자 되물었다.

‘대부업체에서 선생님의 새롭게 바뀐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게 된 걸까요?’

이형식씨는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는 줄 알았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느냐 따져볼 엄두도 못 냈다. 상담사의 권유로 추심원에게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어 조심스러웠는데 오히려 추심원이 태연하게 답을 했다.

“선생님 최근 신용카드 발급받으셨죠? 그 카드신청서 열람해서 알았는데요”

추심원의 불법 추심 내용이 들통난 순간이다. 상담사는 이 내용을 녹취하도록 했고 그 녹취내용을 토대로 신용카드사와 대부업체에 개인 정보 무단 열람에 대한 위법성과 불법 추심 사실을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법원의 파산 면책과정과 같이 복잡하고 고된 절차가 아닌 ‘협상’으로 채무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청구된 채권의 15%를 갚는 것으로 악몽이 해결되었다.

채무자에게 우호적인 상담을 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추심 과정에서 법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편법 추심, 채무자들의 법에 대한 무지를 악용한 불법 추심이 만연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형태의 추심이든 그것이 채권자들이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한 당연한 권리로 여긴다면 그것 자체가 채권자 중심의 사고일 수 밖에 없다.

채무자 우호적인 상담은 채무자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형편에 맞게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온갖 추심으로 만신창이가 된다면 오히려 빚을 더 갚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전화로 추심하는 것 조차 금지하고 있다. 물론 추심에 관한 법률이 아니라 통신법이나 개인정보 보호법에 적용받아 금지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채권별로 방문 추심은 물론이고 하루에 3번까지 전화 추심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 조차 금융위에서 추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강화한 것으로 이전에는 하루 10통까지 가능했다.

“일부러 작게 쪼개서 대출을 받도록 권유”

제2 금융권과 대부업체들은 일반적으로 300만 원 미만의 소액 대출을 많이 한다. 가령 1000만 원을 빌리려고 할 때 일부러 200만 원, 300만 원씩 쪼개서 대출을 받도록 권유한다.

이에 대해서도 최근 서울시의 대부업 분쟁조정위원회에 대출을 쪼개서 판매 권유한 사례가 신고 접수되기도 했다. 하루 3번까지 가능한 전화 추심이란 다중채무자에게 하루 수십 통의 추심전화를 응대하도록 하는 잔인한 제도이다.

이런 추심을 매일 경험해야 한다면 그 채무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업무에 집중하고 어떻게든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의 시간을 살수 있을까?

한 중소기업 대표의 사례에서도 채무자에게 가혹한 추심환경이 오히려 빚을 갚기 더 어렵게 만들고 반대로 채무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이 빚을 더 잘 갚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김인수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2008년 잘나가던 무역업체들을 부도 위기로 내몰았던 파생 금융상품인 키코(KIKO, 환율 위험 관리 상품) 때문에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은행들은 환율변동에 민감한 수출업체들에게 KIKO가 환율이 내려갈 때 손해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설명하며 판매했다. 그러나 정작 키코는 환율이 내려갈 때 기업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환율이 크게 상승할 경우 무한대의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사기적 구조나 다름없이 설계되었다.

키코 사태가 한창이던 2008년 검찰이 의뢰한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견해는 우리나라 키코 사태에 대해 “사기죄로 기소해야 한다”였다.

은행들의 잘못된 금융상품 판매로 하루 아침에 견실했던 기업들이 부도가 나거나 부도위기에 몰렸다. 김인수씨의 회사 또한 금융상품 계약서 한 장으로 법정관리 신세가 되었고 미국에 있는 현지 법인까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으며 대표자인 김인수씨는 빚더미에 올랐다. 그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빚독촉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은 추심 환경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우편함을 열어볼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법원 통지서들이 날아왔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아파트 현관 앞에 법원 출두와 관련된 안내장이 붙어 있기도 했다.

핸드폰은 물론이고 집전화도 불이 나기는 마찬가지, 평생 가정 주부로만 살았던 김인수씨 부인은 스트레스로 고통을 호소했고 자녀들 조차 불안에 떨며 학업에 집중하지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현지법인의 사업계획에 따른 현금흐름을 담보로 새로운 대출을 해주었다. 그 신규 대출은 미국법인의 유동성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을 정상화 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기존의 거래 관계에 기반해 신용 평가를 급격하게 떨어뜨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부채 상환 계획을 새로 조정해 만기가 도래하는 빚까지 2년 연장해 주는 리스케쥴링(rescheduling) 프로그램까지 제공되었다.

갑작스런 재정 위기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의 금융환경은 이렇게 극과 극이었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자신들이 판매한 금융상품 때문에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음에도 신용평가를 급격히 하향 조정해 버렸고 오랜 기간의 거래로 만들어진 신뢰는 평가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기업의 실적이 여전히 상승추세였음에도 그러한 기업의 실질 경쟁력 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무능한 신용평가까지 이뤄졌고 오로지 당장의 연체된 빚을 갚으라고 압박만 할 뿐이었다.

반면 미국의 금융회사는 인심이 좋아서 추가 대출을 공급하고 채무 재조정을 해준 것이 아니다. 기업의 경영 위험과 경쟁력을 과학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신용평가 능력이 리스케쥴링의 배경이었다.

물론 이런 신용평가의 능력은 법적으로 채무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많기 때문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권을 침해하는 범주의 독촉이 금지된 선진국의 금융회사들은 돈을 빌려줄 때부터 신용평가를 여러 각도로 진행함으로써 돈을 떼이지 않도록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신용평가 능력이 올라갈 수 밖에 없고 기업이나 개인 채무자가 잠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인지 회생 불능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당장 연체중이라도 면밀한 평가를 통해 단기 유동성위기일 뿐, 회복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고객에게 추가로 신용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추구 신용 공급 또한 인심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 그들의 영업 전략일 뿐이다.

“채무자 우호적 환경이 빚을 더 잘 갚게 만든다”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지독한 추심환경을 지지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금융사들은 ‘무조건 갚아’라는 공포를 기반으로 신용시스템을 유지하는 즉 봉건적 금융구조에서밖에 생존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는 결국 금융회사의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숨도 쉴 수 없이 몰아붙이는 우리나라의 금융환경에서 김인수씨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법원을 통한 조정뿐이었다. 개인 회생을 신청했고 채무의 30%는 면책을 받았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30% 손해를 본 셈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여러 차례 이뤄진 리스케쥴링과 새로운 유동성 공급을 바탕으로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빚은 전부 갚을 수 있었다.

김인수씨는 법인의 규모와 중요성 때문이라도 될수록 우리나라의 빚부터 갚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채무자 환경은 예고없이 닥친 위기를 추스리면서 천천히 빚을 갚아나갈 시간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채권자는 어제는 ‘돈 빌려 쓰라’고 아우성 치더니 약간의 위기 앞에서 그동안의 관계 모두를 부정해 버리고 사람을 나락으로 밀어넣기 바쁜 모습으로 돌변한다.

여기서 코너에 몰린 채무자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다.

빚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독촉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는 등의 일들은 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금융사들 조차 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만드는 가혹한 금융 환경은 인권 문제를 떠나 효용의 측면에서도 대수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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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T16:50:57+09:00 2015.03.26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