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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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7화, 불법자금에도 있는 공소시효, 가난한 채무자는 없다

우리나라 형사 소송법은 모든 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공소시효의 근거는 우선 ‘범행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가 훼손 되어 진실을 가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 기간동안 도피 생활 등 충분히 ‘형벌에 상응하는 사회적 응징을 받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고 있는 경남기업 고 전 회장의 정치 자금 폭로 사건에서 이 공소시효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유력 정치인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정치 자금 중 일부가 불법성을 떠나 공소시효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25년으로 비교적 길게 적용되지만 정치자금은 형태에 따라 5년에서 최장 10년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되어 불법성이 인정되더라도 부패에 연루된 일부 정치인은 공소시효 완성으로 처벌 받지 않는다. 물론 이에 대해 여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겠지만 법은 원칙대로 작동할 것이다.
그런데 사형에 해당하는 중형도 아니고 형법 상의 죄를 지은 것도 아님에도 ‘형벌에 상응하는 사회적 응징’을 20년 이상 혹은 가족에게도 물려줘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빚’이다.

김순자(가명, 63세)씨는 23년전 남편이 사망한 뒤 어렵게 혼자 아들을 키워야 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을 당시 함께 조그만 가게를 하기 위해 신협에서 돈을 빌렸다. 남편의 사망 후 가게 운영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대출금 500만 원 중 400여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갚지 못했다.

돈을 빌린 곳은 신협이었는데 신협 측에서도 김순자 씨의 딱한 사정을 어느 정도 감안해 추심을 하지 않았다. 담당 직원은 10년 가량 지나면 빚이 사라진다며 빚을 갚지 못해 괴로워하는 김순자씨를 오히려 위로했다고 한다. 그 뒤 23년간 아무런 독촉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신협 직원의 말대로 빚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3년만에 국민행복기금에서 연락이 왔다”

신협의 채권을 양도 받아 채무 조정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해온 곳은 국민행복기금에서 채권 관리를 위탁받았다는 모 신용정보회사였다.

당시 신협 직원이 한 말이 떠올라 김순자 씨는 채권이 오래되어 빚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담당 직원은 그런 제도는 없다는 말과 함께 국가에서 채무 조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50% 감면되었으니 빨리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종용을 했다.

채무가 조정되었다는 감언이설과 더불어 빚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으며 추후에 자식들과 심지어 조카들에게까지 상속된다는 협박성 말도 덧붙였다. 김순자 씨는 빚이 상속된다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동시에 정부가 오래된 빚이지만 줄여준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에 신청서를 작성해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순자씨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좁은 월세집에서 살다 지쳐 얼마 전 10년간 모아온 돈 4천만원으로 1억 1500만 원의 전세를 끼고 1억 5000만 원짜리 집을 매입했다. 전세를 낀 것이기 때문에 언제 입주할지는 까마득하다. 바로 이 집 때문에 낭패가 생겼다.

“감면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이자까지 전부 갚으라”

신용정보 회사 직원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신청서를 받았으나 집이 있기 때문에 부채 감면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이자까지 전부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택에 대해 경매 처분을 하겠다는 것이다.
당장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 이 집에 대해 경매 처분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손해보는 것은 둘째치고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되어버린다. 너무 답답한 마음으로 성남시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찾아왔다.
이 상담사례는 현 대통령의 선거 대표 공약이었던 국민행복기금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김순자 씨의 채권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대로 빚이 사라진 것이다. 상사채권은 5년이 지나면 소멸된다. 일종의 공소시효나 마찬가지이다. 신용정보 회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김순자 씨에게는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그것은 소멸된 채권을 다시 살리려는 꼼수였다.
채권을 다시 살린다는 말은 무엇일까? 형법상의 죄는 공소시효를 완성하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살아나지 않는데 비해 채권은 소멸시효가 지나도 다시 살릴 수 있다. 한마디로 3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이 7년이 지나 발견될 경우 도덕적으로는 흠집이 나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지만 빚은 5년이 지나도 얼마든지 다시 갚아야 할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물론 이는 민법상의 법률로 개인들간의 채권 채무 관계는 양 당사자의 힘의 불균형이 없기 때문에 모두를 보호해야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빚 탕감이나 채무 면책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빚을 떼인 고통스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채무자를 구제하자는 제안은 금융사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금융사는 법률과 제도 활용에 있어 채무자보다 우위에 있으며 온갖 정보와 시스템을 통해 채무자를 괴롭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채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부실한 대출이 많아지면 금융사가 채무자를 괴롭힌다는 사실으로만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연체자들의 근로의욕이 감소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부실대출이 쌓이게 되면 금융사가 부실해지고 결과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금융사를 살려야 할 위험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무분별하게 대출 영업을 하는 금융사들의 행태는 납세자들이 철저히 감시해야 할 위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금융회사는 건전한 대출을 해야 하고 건전한 대출을 하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법률 및 제도적 힘을 사용해야 한다. 그 힘을 채무자를 추심하는데에만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사회적으로 유해하다. 법률에서도 민사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상사 채권 즉 금융회사를 통한 빚은 5년으로 개인들간의 돈 거래보다 짧게 잡고 있다. 그만큼 금융회사들의 책임 또한 강조하기 위한 취지일 것이다.

“소멸시효 이후라도 법적 권리행사를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러한 소멸시효기간은 완성된 이후라도 채권자가 소송제기, 경매신청 등의 법적 권리행사를 하게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물론 채무자가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이의 제기를 하면 소멸시효는 완성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빚을 연체하고 빚 독촉을 받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법원에 청구행위만 해도 채무자가 아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가 쉬울 수 밖에 없다. 개인간의 돈 거래에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금융사들은 법률비용을 부담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추심을 한다.

게다가 최근 사회적 약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법원을 이용할 수 있도로 마련된 전자 소송이 오히려 채권자들에게 반가운 제도가 되어 소송을 남발하도록 만들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신청서

소멸시효 완성을 중단시키는 즉 채권을 다시 살리는 또 다른 경우는 채무자가 빚을 갚겠다는 의사표시를 할 때다.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 채권을 위탁받은 신용정보회사는 직접적인 채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제기와 같은 법률 행위는 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채무자를 달래고 겁주는 방식으로 행복기금 신청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다. 행복기금 신청서 그 자체가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 되어 죽었던 채권도 살리는 묘안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신청서에는 자산 조사에 대해 동의를 한다는 의사표시 또한 해야 한다.
23년전 남편의 사망으로 살림살이가 무너졌고 계속 가난하게 살아야 했던 김순자 씨는 이제 60살이 넘어 다시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되었다. 빚을 깎아주겠다던 추심원의 말만 믿고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한 방법을 찾으려 했던 63세의 그 여성은 이제 부채원금과 연체 이자까지 독촉을 받는 처지에 내몰렸다. 겨우겨우 장만한, 아직은 온전히 자기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집을 뺏겠다는 협박이 전제된 독촉이다. 가난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순식간에 깨지고 무너진다.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상담사는 이 상담을 접수 받고 바로 국민행복기금에 민원을 제기했다.

“빚에 고통 받는 채무자를 위해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소멸시효 지난 채권까지 억지로 살려가며 오히려 힘없는 서민들이 고통 받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은 누가 봐도 채무자를 속여 채무변제표시를 유도한 것으로 매우 악의적이다.

이렇게 채무 변제 표시를 유도해 채권을 살려놓고 정작 국민행복기금 대상에서는 제외한 뒤 집을 담보로 원금과 연체 이자까지 1300여 만원을 갚으라 종용한다는 것은 행복기금이 추심회사만 배불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살만한 일이다.”

여기서 잠깐 행복기금에 대해 덧붙이자면 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채무자를 구제하겠다고 출범한 신용회복 프로그램이다. 행복기금은 부실채권들을 3.4% 가량에 매입해 최대 70%까지 면책을 해준다. 3.4%에 매입해 최대 한도로 부채 원금을 깎아준다고 해도 30%는 회수하게 된다. 결국 27% 가량은 돈이 남는 사업이다. 이렇게 남는 돈은 은행들에게 배당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기정 의원실의 2013년 국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은행들은 행복기금으로부터 9000억 원 가량의 수익을 손에 쥐게 될 것이 추정된다고 한다. 결국 김순자 씨와 같은 가난한 세월을 살아온 연로한 사람의 20년 지난 채권까지 억지로 살려 전부 받아내 은행들에게 수익을 나눠 준다는 이야기다.

김순자 씨의 채권은 아마 행복기금이 매입할 때 1%도 안되는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된 채권이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기 때문에 가격은 그 이하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헐값에 사서 신용정보 회사에 위탁을 했고 신용정보 회사는 원금과 연체이자까지 챙겨 받으려 한다.

추심원이 목적을 달성하면 아마 영업 수당은 어머어마 할 것이다. 통상 17~25% 라고 하니 대략 260만원 전후로 수당을 받게 될 것이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어떤 경우든 채무자를 구제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 중 추심원이 아니라면 이런 현실을 쉽게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3.04.22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 출범 및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가난한 연체자들의 추심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

국민행복기금의 이러한 영업 행태 때문에 그것은 국민행복기금이 아니라 은행 행복기금이고 가난한 연체자들의 추심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소멸시효 채권을 추심하는 것에 대해 몇 차례 문제제기를 했고 국민행복기금 측은 이에 대해 주의하겠다고 답변한 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모 저축은행이 10만여 명의 3조 원이 넘는 부실채권을 매각하려다 금감원의 지적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채권추심법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추심을 금지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금감원의 말대로 채권추심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11조에서 ‘무효이거나 존재하지 아니한 채권을 추심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는 소멸시효 지난 채권을 추심하지 말라고는 하나 거래 하지 말라고는 정확히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를 근거로 저축은행과 카드사들은 소멸시효 지난 채권들을 다른 부실채권과 섞어서 판매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채무자 구제프로그램이라는 공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실제로는 애매한 법망을 근거로 이렇게 부실채권까지 사들여 불법추심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채무자 우호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통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는 행복기금 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사례에서도 소멸 시효를 완성한 채권을 추심한 경우도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사례 또한 60세 이상의 고령자의 사연이었다. 10년 전 회사 부도 이후 암수술까지 받아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진 노인이다. 그는 최근 채무 원금 670만 원에 연체 이자까지 더한 3700만 원에 대해 대부업체로부터 빚독촉을 받게 되었다.

센터에서는 우선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먼저 조회하도록 조치를 했다. 신용정보를 통해 부채 추정 정보를 확인한 후에 초본에 따라 모든 법원 사건기록을 확인했으나, 부채 기록이 없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달 대부업체에 내용증명을 발송해 주었고 60세의 그 노인은 이제 빚독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이것은 전문 상담사들이 법률 지식을 금융사가 아닌 가난한 채무자를 위해 적용하면서 이뤄진 보호 조치들이다.(채무자 보호 제도는 철저히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된다) 금융사와 추심회사, 대부업체들은 법과 제도의 틈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법률 정보와 지식에서 약자 입장인 채무자를 일방적으로 괴롭혀 왔다. 이렇게 불균형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채권 추심들이 오늘도 평생 빚으로 고통 받고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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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T16:52:25+09:00 2015.04.16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