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자(가명, 63세)씨는 23년전 남편이 사망한 뒤 어렵게 혼자 아들을 키워야 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있을 당시 함께 조그만 가게를 하기 위해 신협에서 돈을 빌렸다. 남편의 사망 후 가게 운영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결국 대출금 500만 원 중 400여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갚지 못했다.
돈을 빌린 곳은 신협이었는데 신협 측에서도 김순자 씨의 딱한 사정을 어느 정도 감안해 추심을 하지 않았다. 담당 직원은 10년 가량 지나면 빚이 사라진다며 빚을 갚지 못해 괴로워하는 김순자씨를 오히려 위로했다고 한다. 그 뒤 23년간 아무런 독촉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당연히 신협 직원의 말대로 빚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3년만에 국민행복기금에서 연락이 왔다”
신협의 채권을 양도 받아 채무 조정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해온 곳은 국민행복기금에서 채권 관리를 위탁받았다는 모 신용정보회사였다.
당시 신협 직원이 한 말이 떠올라 김순자 씨는 채권이 오래되어 빚이 사라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담당 직원은 그런 제도는 없다는 말과 함께 국가에서 채무 조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50% 감면되었으니 빨리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종용을 했다.
“감면은 불가능하고 오히려 이자까지 전부 갚으라”
“그렇다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독자들 중에는 빚 탕감이나 채무 면책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빚을 떼인 고통스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채무자를 구제하자는 제안은 금융사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금융사는 법률과 제도 활용에 있어 채무자보다 우위에 있으며 온갖 정보와 시스템을 통해 채무자를 괴롭힐 위험이 있기 때문에 채무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부실한 대출이 많아지면 금융사가 채무자를 괴롭힌다는 사실으로만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연체자들의 근로의욕이 감소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부실대출이 쌓이게 되면 금융사가 부실해지고 결과적으로 세금을 투입해 금융사를 살려야 할 위험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무분별하게 대출 영업을 하는 금융사들의 행태는 납세자들이 철저히 감시해야 할 위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금융회사는 건전한 대출을 해야 하고 건전한 대출을 하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법률 및 제도적 힘을 사용해야 한다. 그 힘을 채무자를 추심하는데에만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사회적으로 유해하다. 법률에서도 민사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고 상사 채권 즉 금융회사를 통한 빚은 5년으로 개인들간의 돈 거래보다 짧게 잡고 있다. 그만큼 금융회사들의 책임 또한 강조하기 위한 취지일 것이다.
“소멸시효 이후라도 법적 권리행사를 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러한 소멸시효기간은 완성된 이후라도 채권자가 소송제기, 경매신청 등의 법적 권리행사를 하게 되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물론 채무자가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이의 제기를 하면 소멸시효는 완성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빚을 연체하고 빚 독촉을 받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법원에 청구행위만 해도 채무자가 아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가 쉬울 수 밖에 없다. 개인간의 돈 거래에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지만 금융사들은 법률비용을 부담하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추심을 한다.
게다가 최근 사회적 약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법원을 이용할 수 있도로 마련된 전자 소송이 오히려 채권자들에게 반가운 제도가 되어 소송을 남발하도록 만들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채무조정신청서
“빚에 고통 받는 채무자를 위해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소멸시효 지난 채권까지 억지로 살려가며 오히려 힘없는 서민들이 고통 받게 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은 누가 봐도 채무자를 속여 채무변제표시를 유도한 것으로 매우 악의적이다.
이렇게 채무 변제 표시를 유도해 채권을 살려놓고 정작 국민행복기금 대상에서는 제외한 뒤 집을 담보로 원금과 연체 이자까지 1300여 만원을 갚으라 종용한다는 것은 행복기금이 추심회사만 배불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살만한 일이다.”
여기서 잠깐 행복기금에 대해 덧붙이자면 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채무자를 구제하겠다고 출범한 신용회복 프로그램이다. 행복기금은 부실채권들을 3.4% 가량에 매입해 최대 70%까지 면책을 해준다. 3.4%에 매입해 최대 한도로 부채 원금을 깎아준다고 해도 30%는 회수하게 된다. 결국 27% 가량은 돈이 남는 사업이다. 이렇게 남는 돈은 은행들에게 배당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기정 의원실의 2013년 국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은행들은 행복기금으로부터 9000억 원 가량의 수익을 손에 쥐게 될 것이 추정된다고 한다. 결국 김순자 씨와 같은 가난한 세월을 살아온 연로한 사람의 20년 지난 채권까지 억지로 살려 전부 받아내 은행들에게 수익을 나눠 준다는 이야기다.
김순자 씨의 채권은 아마 행복기금이 매입할 때 1%도 안되는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너무 오래된 채권이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기 때문에 가격은 그 이하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헐값에 사서 신용정보 회사에 위탁을 했고 신용정보 회사는 원금과 연체이자까지 챙겨 받으려 한다.
추심원이 목적을 달성하면 아마 영업 수당은 어머어마 할 것이다. 통상 17~25% 라고 하니 대략 260만원 전후로 수당을 받게 될 것이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고 어떤 경우든 채무자를 구제해서는 안된다는 사람들 중 추심원이 아니라면 이런 현실을 쉽게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3.04.22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 출범 및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
“가난한 연체자들의 추심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
이 사례 또한 60세 이상의 고령자의 사연이었다. 10년 전 회사 부도 이후 암수술까지 받아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진 노인이다. 그는 최근 채무 원금 670만 원에 연체 이자까지 더한 3700만 원에 대해 대부업체로부터 빚독촉을 받게 되었다.
센터에서는 우선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먼저 조회하도록 조치를 했다. 신용정보를 통해 부채 추정 정보를 확인한 후에 초본에 따라 모든 법원 사건기록을 확인했으나, 부채 기록이 없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달 대부업체에 내용증명을 발송해 주었고 60세의 그 노인은 이제 빚독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