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2012년 대선 당시 인기를 끌었던 선거 구호다. 선거라는 건조한 정치 이벤트에 등장하는 선동적인 구호들과 달리 서정적이다. 서정적이어서 새로운 이 표현은 지독한 생존 경쟁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그대로 꽂혔다. 혹자는 이 표현을 듣는 순간 가슴에서 묵직한 것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특히 남성들이 강한 반응을 보였다.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평범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점점 지독해지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원을 전전하며 길고 긴 입시지옥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등록금 빚을 지고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기다리는 것은 청년 실업이라는 칼바람이다. 가까스로 취업한다 해도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려면 최소한 억 단위의 돈을 모아야 한다. 아니면 시작부터 전세자금 대출이다.
집을 한 칸 사는 것은 빚없이 꿈도 못 꾼다. 결국 20대부터 시작된 빚은 삶 전체를 채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린다. 30대 중반에 직장을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주말이면 소박한 외식 정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전쟁과 같은 경쟁을 통해서 얻게 될 대단한 전리품이다.
그러나 그 전리품은 매월 어김 없이 빚을 갚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시간 위에 놓여 있는 유리잔이다. 금융으로 둘러싸인 일상, 불안전한 사회안전망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게 된 전리품을 하루아침에 산산조각 내기도 한다.
초등학교 1학년생을 키우는 박주원씨(38세)는 어른들이 시키는 데로 열심히 공부했고 등록금 대출로 대학을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등록금 대출을 겨우 상환했지만 그 사이 전세자금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 월세 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허리띠 조여가며 돈을 모아 드디어 전세 자금 대출을 끼고 전셋집 마련에도 성공했다.
집 현관문에 월세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월세는 마음부터 서럽고 불안한 반면 전세는 그저 든든하다. 그러다 그 작은 행복에 금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님이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비 폭탄을 떠안게 됐다. 갖고 있던 비상금까지 털어 빚까지 끼고 겨우 마련한 전셋집을 도로 월세로 바꿔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병원비는 전세금만 잡아먹은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결국 카드 돌려막기에서 대부업 대출에까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급한 마음에 광고에서 본 믿을 만하고 친구 같은 대부 업체에 무작정 전화해 돈을 빌렸다. 큰돈도 아니었다. 겨우 500만 원.
다행히 아버님 앞으로 가입해둔 보험이 있어 보험금을 청구해둔 상태니 잠시만 쓰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달부터 버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월세와 병원비 때문에 돈을 빌리자마자 이자를 연체하게 됐다.
보험금으로 갚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크게 염려하지 않았는데, 보험금 지급이 늦어졌다. 결국 연체로 이어졌고, 연체와 동시에 독촉이 시작됐다. 황당한 것은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와 아이가 보는 앞에서 협박을 했다. 겨우 500만 원으로 죄인 취급당하는 것도 화가 났지만, 아이가 받았을 충격에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더 큰 분노를 느꼈다.
“평범한 일상이 지옥이 됐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아이들 교육비를 해결하려던 김지숙(50대)씨도 금세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대출로인해 평범한 일상이 지옥이 됐다.
그녀는 우리에게 딱 2번 전화해서 내내 울었다. 정확히 어떻게 빚이 시작됐는지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한 채 추심과정의 폭언으로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녀는 대부업체서 돈을 빌렸는데 남편이 퇴직하는 바람에 돌려막기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한다. 연체 기간이 길어지면서 빚독촉이 가혹해지고 급기야 추심원으로부터 “나이가 들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아들 같은 놈에게 뜨거운 맛 좀 볼래? 남편한테 알려서 집안을 작살내버릴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가부장적인 사람인지 김지숙씨의 채무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고 알게 되면 ‘자신은 이혼 당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후 우리는 걱정스런 마음과 해결책 모색을 위해 김지숙씨에게 여러번 연락을 취했지만 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집과 직장을 방문해 채무 독촉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방문 독촉을 금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는 방문 추심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전의 추심관련 법(〈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10조,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26조의2)에 따르면 대부업자나 금융기관 등이 집이나 직장을 찾아와서 빚 독촉을 하기 어려웠다.
그때도 여전히 모호한 전제 조건이 있었으나 ‘정당한 사유 없이’ 방문해서 독촉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2009년 법이 개정되면서 황당한 문구가 삽입됐고 그 문구는 추심 시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반복적으로 또는 야간(오후 9시 이후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이라는 문구가 추가된 것이다. 집이나 직장을 방문해서 추심하는 것을 가급적 ‘금지’하는 것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문구 하나로 집이나 직장으로 낮 시간 동안 한두 번 방문하는 것은 법의 허가증을 받은 셈이나 다름없게 됐다. 이 문구 때문에 연체자들은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추심원들을 만나게 됐다.
이에 대해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은 “야만적인 추심환경”이라며 지속적으로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2014년 개정된 채권추심법에도 여전히 ‘반복적으로 야간에’라는 문구는 살아남았다.
“이렇게 야만적인 추심환경에서 채무자들은 어떻게 대응 해야 할까?”
불법이니 신고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추심 과정에서 타인이 채무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은 금지사항이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채무 사실을 타인에게 알린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추심을 한 것은 불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박주원씨는 불법 추심을 당한 것이다. 전화로 욕설을 들은 김지숙씨의 경우도 폭력과 협박을 금지하는 법 조항(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9조 1호)을 어긴 불법 추심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불법성을 채무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법적 허술함 때문에 그저 신고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 불법성 입증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민망하고 아이에게 할 수도 없다.
전화로 들었던 욕설 또한 입증할 방법이 없다. 결국 불법 추심을 당했지만 이에 대해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겠지만 법 개정이 지체되고 있으니 채무자들은 우선 연체가 시작된 후 빚독촉 전화를 받거나 방문을 접할 경우 무조건 녹음을 하거나 상황을 녹화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담담하게 상황에 대처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칫 감정적으로 반응하다 보면 쌍방 과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 진다. 최대한 빚을 갚지 못하는 사정을 찬찬히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자신이 몰라서 겪을 수 있는 대우에 대해 추후 자문을 구할 용도로 녹음이나 녹화를 하겠다고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녹음 혹은 녹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신고 접수를 해야 하는데 경찰서 보다는 지자체의 대부업 관리 감독 팀에 전화해 민원을 접수하는 것이 더 낫다.
현재 대부업체는 관리 감독 권한이 금감원이 아니라 기초단체에 있기 때문에 불법 추심을 한 대부업체에 대해 폐업 또는 형사 고발을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지자체 신고 접수는 대부업체로부터 빚독촉을 받을 경우에 한정되고 은행이나 카드사들이 추심회사에 위탁을 준 경우는 금감원으로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시민단체들과 서울시, 25개 구청이 동시에 대부업 관리감독을 철저히 진행하고 있다. 2개월에 한번 민관 대책회의를 진행하면서 구청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대부 업체를 감독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사고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업무임에도 매우 까다로운 민원업무라는 이유로 구청 담당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였다.
민관 대책회의 1년 동안 구청 담당 공무원들은 지나치게 자주 교체됐고, 매번 새로 교육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3년차로 접어들면서 점차 애착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절반 가까이의 공무원들이 1년 이상 그 업무를 지속하면서 민원 처리와 대부 업체의 무리한 추심 등의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동대문구의 대부업 담당관은 그 업무만 현재 6년 째 수행하고 있는 배테랑이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채무자의 딱한 사정을 듣고 대부업체에 직접 채무를 조정해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울시 소재의 대부 업체로부터 독촉을 받고 있다면 우선 구청의 대부업 담당자에게 민원접수를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성남시의 경우도 최근 대부업 관리감독 업무를 맡고 있는 지역경제과에 금감원 퇴직자를 대부업체의 일상적인 검사역으로 채용했다.
올 초부터 출범한 금융복지 상담센터와 함께 대부업체의 모니터링과 정기적인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불법 대부계약 혹은 추심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경기도가 하반기부터 금융복지 상담센터를 개설할 준비를 추진하고 있고 인천 남구청이나 부평구청 등에서 검사역을 채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경우 최근 개정된 법률에 근거해 채무자 대리인을 지정할 수도 있다”
불법 추심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것 외에도 저소득층의 경우, 최근 개정된 법률에 근거해 채무자 대리인을 지정할 수도 있다.
지난 해 7월에 개정된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개정에 따라 채무자는 대부업체의 채권에 한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정할 수 있다.
채무자 대리인제도 | 서울 금융복지상담센터 1644-0120 | 성남시 금융복지상담센터 031-755-2577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대리인을 선임하고 난 뒤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직접 방문하거나 ‘말, 글, 음향, 영상 또는 물건등을 채무자에게 도달하게 해서는 안 되며, 채권 추신에 관한 모든 연락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채무자 대리인에게만 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과태료의 대상이 된다.
물론 이 법 또한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모든 채권에 대해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의 반대에 부딪혀 대부업 채권에만 부분적으로 적용되는데 그쳤다. 서울시와 성남시는 최저 생계비 200%이하의 저소득층에게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이용해 법률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채권 채무 관계는 사적 계약의 영역이고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는 약속을 전제로 이뤄진 관계다.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빌려준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여러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재산과 소득에 대해 압류하거나 개인 정보 열람을 법원으로부터 승인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에서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인권까지 침해하라는 권리를 부여한 적은 없다. 사적 분쟁에 대해 법이 작동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양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공정한 조정을 거치더라도 인권 보호의 테두리 안이다.
추심을 가혹하게 하지 못하게 하면 ‘누가 빚을 갚겠냐’라는 반문만큼 과장된 것은 없다. 오늘도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고 있는 채무자들은 추심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신용사회의 건전한 채무자로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욕설이 아니더라도 연체 사실을 통보받는 전화는 충분히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집에 찾아와 상냥하게 연체 사실을 알리고 상환 계획을 묻는 것 만으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오히려 채권자들도 채무자들이 빚을 갚을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데 조력자가 될 필요가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의도적으로 모든 채무 변제 의무를 피하고 오히려 큰 소리치는 채무자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소수고 채권 추심 환경이 지독하더라도 이들을 막을 방법은 형사 처벌 외에 없다.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비교적 평범한 채무자들이 모두가 지독한 환경에 노출돼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비정한 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