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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남의 돈 떼먹는다고? 묻지마 대출이 더 문제

[부채탕감기획시즌2-3]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 맡은 유종일 KDI 교수

부실 채권을 소각해 장기 연체자를 구제하는 ‘한국판 롤링 주빌리’ 운동이 ‘주빌리 은행’으로 거듭납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8월 사단법인 희망살림과 함께 진행한 ‘부채 탕감’ 기획으로 부실 채권 ‘땡처리’ 실태와 약탈적 대출을 고발했습니다. 그 사이 ‘99%에 의한, 99%를 위한 빚 탕감 프로젝트’로 792명의 빚, 51억 3400만 원이 사라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주빌리 은행 출범을 앞두고 다시 ‘부채탕감 기획 시즌2’를 진행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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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빌리은행 공동은행장을 맡은 유종일 KDI 교수는 “이자수익만 좇아 묻지마 대출해준 금융회사가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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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우리의 소중한 돈이고, 예금이죠.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그 돈을 (은행에) 맡겼을땐, 어떻게 해주길 바랬을까 생각해보세요.”

그는 기자를 향해 되물었다. 딱히 기자의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은 아니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개혁성향의 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그가 ‘은행장’으로 다시 나섰다. 이름도 생소한 ‘주빌리 은행’이다. (관련기사: “지금 이 자리서 100억 빚이 사라집니다” )

그와의 인터뷰 말미에 누리꾼의 질문을 전했다. “(돈을) 빌려쓰고 갚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 돈 역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예금이라는 것을 아시는지…”(네이버 댓글 중 mazi***) 유 교수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이어 금융회사로서 은행들이 과연 제대로 된 역할을 해왔는지를 봐야한다고 했다. 그는 “(고객들은) 내 돈이 떼먹이지 않고,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우리 경제가 잘 돌아갈수 있도록 쓰여지길 바라고 (돈을) 맡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금융 현실은 사뭇 달랐다. 유 교수는 “오로지 이자 수익에만 꽂혀서, 빚을 갚기도 어려운 사람에게 고리(高利)로 빌려주고 나중엔 가정을 파괴하는 약탈적 행태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같은 행태를 보인 금융회사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이라며 “정말 수년동안 빚으로 시달려 온 채무자들을 구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내가 경제학자, 고통당한 사람의 빚 탕감은 도덕적 의무”

나지막했던 그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한참 올라와 있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지식협동조합 사무실. 그와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예전보다 호리호리해진 몸매에 얼굴색은 훨씬 나아 보였다. 올해 초 그의 갑작스러운 병환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쾌유를 빌었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자신의 건강상태를 알렸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극복해 나갔다.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하자, 그는 웃으면서 “몸무게도 줄고, 실제로 (건강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많은 분들의 진심 어린 관심이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1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 내내 그는 특유의 비유와 직설적인 화법을 써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 사실 주빌리 은행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름 자체가 그렇게 들릴 수도 있고…원래 지난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운동’에서 시작됐다. 시민에게 기부를 받아서 장기 연체자의 빚을 사들여서 소각하는 것인데, 금융 채무자의 권리를 보다 분명하게 알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채무자로서의 권리라는 것은.
“빚을 졌다고 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까지 빼앗길 수는 없지 않은가.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것을 두고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수치심과 공포감, 좌절과 막막함 등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재활할수 있도록, 채무자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 일부 시민사회 등에서 ‘빚 탕감 프로젝트’를 해왔었다. 그동안 보수진영 등에선 도덕적 해이를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곧장) 경제학자인 내 입장에서도 일리있는 문제제기라고 본다. 하지만 이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빚을 갚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이자 수익을 올리기 위해 묻지마 대출해준 금융회사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부실대출로 은행이 망가지면,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을 들여서 다시 살려주는 것이 도덕적 해이 아닌가.”

“이자수익만 좇아 묻지마 대출해준 금융회사가 진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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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일 교수는 “수년동안 빚으로 시달려 온 채무자들을 구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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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인 그의 생각은 분명했다. 그의 말을 좀 더 옮겨본다.

“이런 금융회사들의 ‘약탈적 대출’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금융위기를 몰고 온 주범이기도 하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도 금융회사들의 ‘묻지마 대출’에서 나온 거 아니에요. 소득도, 자산도 없는 사람한테도 거의 돈을 뿌려 줬으니… 오바마 대통령이 뒤늦게 금융개혁을 추진하면서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 기관을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유 교수는 “오로지 돈벌이용으로 대출을 이용하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악성적인 추심 행위를 벌이는 것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서 금융 소비자의 인권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주빌리 은행 출범과 함께 빚 탕감 운동을 우리 사회에 적극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 일부 빚을 가진 사람들이 자칫 자신의 빚도 탕감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시중은행 같은 그런 은행은 아니다. 게다가 특정 개인의 빚을 직접 탕감해주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수십, 수백 조 원에 달하는 부실채권 시장에서 어떤 특정 개인의 빚을 찾아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 주빌리 은행은 원금의 7%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는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어떤 특정 개인의 부실채권을 우리가 사들이는 게 아니다. 대신 부실채권이 거래되는 시장이 따로 있다. 회계법인에 자문을 구했더니, 요즘 시장에서 거래되는 악성 부실채권의 경우 원금의 5-6% 수준이라고 한다.”

– 원금의 5% 내외에서 부실채권을 사들여서, 채무자에게 7% 원금만 받고 빚을 없애준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본적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이기 위한 종잣돈은 기부 등을 통해서 마련하고, 향후 채무자들이 낸 돈으로 다시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생활 자체가 정말 힘들어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겐 그냥 (빚을) 탕감해 준다.”

“주빌리 은행은 지옥에서 채무자들 벗어나게 해주는 곳”

그와 만나기 앞서, 관련기사의 누리꾼 반응을 살펴봤다.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격려의 댓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히려 ‘도덕적 해이’, ‘악용’ 등의 부정적인 의견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에게 물었다. ‘취지는 좋지만, 빚을 의도적으로 갚지 않는 등 악용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말이다.

“세상에 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의 운동도 모든 빚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문제는 빚을 갚기 어려운 사람에게 무리하게 빚을 내주고, 본인은 물론 가족을 상대로 인간으로 견디기 힘든 공포와 수치심, 자괴감 등을 갖도록 해서 빚을 받아내는 거예요. 이런 비인간적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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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종일 교수는 “오로지 돈벌이용으로 대출을 이용하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악성적인 추심 행위를 벌이는 것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면서 금융 소비자의 인권 차원에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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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교수는 “내일(27일) 출범식 때 50억 원 어치의 부실채권을 진짜 불로 태워 없애는 퍼포먼스도 벌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서울시청 안 사민청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유 교수를 비롯해 공동은행장으로 참석한 이재명 성남시장 등 정관계 인사들은 각자 받아든 부실채권을 소각했다.)

이에 앞서 그동안 ‘빚 탕감 운동’을 벌여온 사단법인 희망살림은 작년 4월 이후 모두 51억원 어치의 부실채권을 소각했었다. 유 교수는 “희망살림과 이번 소각분까지 합하면 모두 100억 원 어치의 빚이 사라졌다”면서 “앞으로도 부실채권을 더 적극적으로 매입해서, 빚 탕감운동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3년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부탁했다. 한국경제를 ‘가라앉은 세월호’에 빗대면서, “국내외 경제위기라는 엄청난 풍랑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호’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경제활성화를 하고싶 다면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경제민주화를 지키면 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제껏 그래 왔듯이 그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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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T08:55:23+09:00 2015.09.02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