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새, 나만 모른 채 │
*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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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살. 대한민국 청년 중 1인.
– 통신사 고객센터 계약직 근무. 월 소득 110.
– 어머니 상속 채무(1900), 건강보험료 체납(400), 아버지 병원비를 위한 대부업 대출(400), 아버지가 본인 명의로 받은 정수기 대여비(120), 아버지 병원비를 위한 카드비(130), 통신비 연체(?)
250만 원을 갚으라고 서류가 왔다. 어머니의 상속채무를 갚으라는 서류였다. 21살, 공장에 취직해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한 달에 매달 250만 원을 갚으라면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시작할 의지가 꺾였다.
어머니는 14살 때 돌아가셨다. 내가 상속받은 어머니의 빚은 그때부터 연체되고 있었다. 당시 법원에서는 나에게 빚이 있다는 내용의 서류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서류를 본 적도, 아버지나 형에게 들은 적도 없다. 나도 모르는 새, 나만 모른 채, 나는 14살 때부터 상속 채무자가 된 것이다.
억울했다. 부모님이 어디에다가 쓰셨는지도 모르는 돈이다. 나한테 쓰셨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한 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큰돈, 큰 빚이 갑자기 생겼다. 그냥 자포자기했다. 내가 왜 갚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23살, 핸드폰을 개통하려는데 할부가 안 된다고 했다. 어머니 상속 빚을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로 등록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빚을 해결하기 위해 상속 포기를 진행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는데 다 돈이었다. 변호사비만 해도 140만 원을 달라고 했으니… 법원 앞 무료 상담소에서 상담 받고 법원에 신청하고 상속 포기에 필요한 서류도 다 제출했다. 내 딴에는 할 만큼 했다. 그런데 법원으로부터 기각처리를 받았다.
- 기각 이유 1. 아빠랑 형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나의 나머지 가족이 상속 여부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나에게 빚의 존재를 알려줬을 거라는 것
- 기각 이유 2. 법원은 빚이 있다는 서류를 당시 이미 보냈고 반송이 안 왔으니 빚이 있다는 것을 본인이 확인했다는 것
이 이유였다.
채무 상속을 포기하려는 자녀들은 ‘상속재산이 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 관할 법원에 상속 포기를 신청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담당자가 내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본인 확인을 위한 통화를 한 것도 아니다. 달랑, 서류 하나 보냈다는 것으로 본인에게 알림이 된 것으로 단정 짓고 그 뒤로는 처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1만 원, 2만 원 적은 돈도 아니고. 그리고 무엇보다 14살, 미성년자에게 빚을 상속시켰다니 부당하다.
그 뒤로 어머니 빚 해결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어리기도 했고 나 몰라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5년 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는 ‘진짜 내가 갚아야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다시 개인회생 등의 채무조정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가능할까. 회생을 신청하면 한 달에 110만 원을 버는데 월급의 거의 반에 가까운 돈을 상환하는 데 써야 한다. 나머지 돈으로 한 달을 생활할 수 없다.
5년 이내에는 모든 빚을 다 갚고 싶다. 그런데 모든 게 너무 불분명하다. 답답하다. 부모님 빚이 내 빚이 된 건 어머니 상속채무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체납하신 정수기 대여비도 있었다. 그래서 빚이 얼마나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상속채무처럼, 정수기 대여비처럼 내가 빌린 돈이 아닌데 갑자기 ‘너의 빚이라며’, 또 나타날 수 있다.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벌려면 지낼 곳이 있어야 하는데, 방을 구할 돈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얹혀살며 여기저기 떠돌았다. 친구네 집에 서 얹혀살다가 친구가 집을 정리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또 다른 친구가 있는 지역으로 일을 구해서 갔다가, 지낼 데가 없어져서 또 다른 친구에게 가서 살고, 또 다른 지역으로 가고, 또 다른 지역으로 가고… 빚을 갚아야 하는데 돈을 벌고 갚을 환경이 되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됐다.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출근할 돈도 없을 때, 그럴 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10만 원 빌려달라고 하면 30만 원, 50만 원씩 넣어주고 가끔 친구들이 통장으로 말도 안 하고 돈 넣어주기도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 빌려달라고 해놓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 갚은 돈도 있다. 친구들이 가족보다 더 가깝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살고 있지 않았을 거다.
빚을 갚으면 또 빚을 질 것 같다. 작은 원룸을 구하려고 해도 빚을 져서 집을 구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서민대출 없이는 살기 힘든 나라 아닌가.
빚을 갚으면 나를 위해 돈을 써보고 싶다. 나를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다. 미래에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딱 3개월만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싶다. 노래 배우는 걸 좋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