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다는 둘이 같이 하는 게 좋지 않겠어? │
* 앞 편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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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8일
드디어 고시원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부터는 엄마와 월세방에서 산다. 지난 겨울 200만원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서 몇 달 동안 공사장 막노동으로 보증금을 마련했다. 내 삶의 가장 힘든 시기였다. 월세방은 반지하라 햇빛이 잘 안 들지만 그래도 좋다. 이제 엄마랑 같이 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엄마 병원비로 다달이 100만원씩 나갔지만 행복하다. 엄마는 왼쪽 다리가 불편하시지만 그래도 반쪽이 마비되셨던 건 다 치료했다.
2013년 10월 18일
사람을 안 만나게 되고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원래 나는 아무 이유 없어도 잠깐 만나서 커피 마시는 걸 좋아했고 농담도 잘하는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먼저 입을 떼지 않는다. 면접 보고 그럴 때 빼고는. 누가 만나자 그러면 바쁘다고 답하게 된다. 눈 앞에 내가 갚아야 할 돈이 산더미라 돈 한 푼도 맘편히 쓸 수가 없고 웃고 떠들 힘이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어디 투잡할 거 없나 찾아보고, 집에 박혀있고. 살도 많이 쪘다. 20키로 넘게…
고속도로를 타고 출장을 가다 보면 차가 엄청 많다. 나는 먹고 살기 바빠서 일하고 있는데 쟤네는 어딜 저렇게 놀러갈까. 페이스북도 다 지워버렸다. 자랑글 꼴 보기 싫어서.
20대에 차를 산 게 제일 후회된다. 그 때는 내 30대를 알 수도 없었고 볼 수도 없었으니까.
2015년 4월 11일
4번째 시도 실패. 살기도 어렵지만 죽기가 더 어렵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 느낌이 너무 싫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누가 와있을 것 같은 느낌. 내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심리적인 압박이 너무 심하다. 그냥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고아원에 있을 때도 엄청 힘들었지만 빚 독촉 받는 게 그만큼 괴롭다. 누가 찾아올까봐 방 창문을 항상 닫아놓고 불 꺼놓고 산다. 환기가 잘 안되지만 익숙해졌다.
200만원 안되는 월급. 어머니 병원비, 월세, 생활비 내고 나면 월급이 똑 떨어진다. 나도 할부를 갚고 싶지만 도저히 낼 돈이 없다. 건강보험료도 밀려서 맘대로 병원에 갈 수가 없다. 고아원에 있을 때는 병원비가 면제여서 계속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갑자기 몇백만원짜리 건강보험료 청구서가 날아왔다. 아파도 참거나 다른 사람 이름을 대고 병원에 간다. 지금은 크게 아픈 데가 없기 망정이지 어디 병이라도 나면… 그 땐 어떻게 해야될까.
다시 조선소로 가고 싶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돌아갈 자리가 없다.
2016년 7월 22일
이제는 이자 5000만원이 붙어 빚이 총 8500만원이다. 8500만원. 너무 무겁다. 내 연봉이 1년에 2천만원 조금 넘는데.
여자친구가 여러번 결혼하자고 말했다. 헤어질 각오를 하고 내 상황을 쭉 설명해줬다. 미안해서 결혼 못 하겠다고. 그러자 그녀가 하는 말. “혼자 해결하는 것보단 둘이 같이 해보는게 좋지 않겠어?” 이래도 되나 싶지만 결혼하기로 했다.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에는 나쁜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2016년 11월 1일
결혼준비를 하고 있다. 결혼을 해도 주소지가 밝혀질까봐 혼인신고도 못 할 것 같다. 빚을 해결해야 혼인신고도 하고 아이에 대한 계획도 세울 수가 있다. 여자친구는 빨리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 신혼여행도 나중으로 미뤘다. 사실 아직도 결혼하는 게 맞는건지 모르겠다.
2016년 11월 28일
어제 13시간 운전을 해서 그런지 너무 피곤하다. 이직하고 싶지만 공백이 생기면 안된다.
빚을 다 갚은 꿈을 꿨다. 만약 빚이 없다면? 모르겠다. 난 단풍놀이, 벚꽃놀이 같은 것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근데 만약 빚을 다 갚는다면 그냥 집에 가만히 있고 싶다. 잠도 한 번 푹 자고 싶고. 맘 편히 자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자고 있으면 옆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려서 하루에 많이 자면 4-5시간 잔다. 그냥 아무 걱정 없이 한 달 정도 푹 쉬고 싶다.
나중에 40, 50대가 돼서 잘 살게 되면 고아원 아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 아니, 아예 고아원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 다음에 돈이 남으면 돈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가는 사람에게 학비를 지원해주고 싶다. 주빌리은행 같은 데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동안 빚 문제로 상담할 때마다 진행비로 얼마를 달라 그러는 데가 너무 많았다.
언제쯤 빚을 갚고 이런 걸 다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엄마를 괜히 찾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이제 엄마는 평생 내가 모시고 살아야되는데. 아니다. 그래도 좋다. 엄마에게 돈이 많이 들어도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다. 빚이 아무리 많아도 내 옆엔 엄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