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ㅣ입력 : 2017.06.22 21:28:01 ㅣ수정 : 2017.06.22 21:48:26
필자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의 굴레에 묶여 신음하는 이들의 빚 문제를 해결해주고 새 출발을 돕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대표다. 단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인간적 추심에 노출되어 인권을 유린당하고,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기도 하고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하는 비정한 현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시작한 운동이다. 자산과 정보가 부족한 경제적 약자의 끔찍한 희생을 양산하는 약탈적 금융을 추방하고, 복지와 결합하여 이들의 자활을 돕는 착한 금융을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주빌리은행은 출범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3만6000명이 넘는 채무자들의 6000억원이 넘는 채무를 탕감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 1년 동안 1000억원 탕감을 목표로 삼았던 것에 비추어 기대 이상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따듯한 많은 국민들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50만명이 넘는 장기연체자들의 수나 최소한 100조원을 상회하는 장기부실채권 규모에 비해 주빌리은행이 이룬 성과는 ‘한강투석’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상근 직원 다섯 명의 시민단체가 독지가들의 작은 정성에 기대어 추진하다보니 너무도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다행히 새 정부가 소액 장기연체자들의 채무를 탕감하기로 했다고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는 채무 탕감은 정부에 넘기고 서민들이 빚의 굴레에 빠져들지 않도록 사전에 도와주는 금융복지 상담에 주력하겠다는, 나아가 법과 제도 및 금융관행의 변화를 통해 착한 금융을 제도화하는 일에도 나서야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빚 탕감 얘기가 나오면 언제나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새 정부의 채무 탕감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러나 채무 탕감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주빌리은행이나 새 정부가 탕감의 대상으로 삼는 채무는 한마디로 갚지 않는 빚이 아니라 갚지 못하는 빚이고, 그러기에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나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못지않게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며, 금융의 효율성을 올리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채무자 권리보호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 국민이 이런저런 빚을 지고 살아가며, 또 대다수 국민은 빠듯한 살림을 더욱 알뜰히 꾸려가며 빚을 갚는다. 그러니 오랫동안 갚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채무를 탕감해준다는 말을 들으면 우선 반발심과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고생하며 빚을 갚은 정직한 사람은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변제 의무를 저버린 부도덕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식이면 앞으로 누가 빚을 제대로 갚겠나? ‘버티면 국가가 탕감해주겠지’라는 생각이 만연하지 않겠나? 이런 문제제기의 맹점은 장기연체자들이 일부러 빚을 갚지 않은 부도덕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들은 형편이 어려워 빚을 갚지 못한 것뿐이며, 대부분 이를 매우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는 원금 이상의 금액을 이미 변제했으나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여 장기연체자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고강도 추심과 사회적 배제의 고통을 장기간 감내한 사람들이다. 정부가 이들의 채무를 탕감해주었다고 해서 자신도 이와 같은 고통을 10년 이상 감당하며 채무 탕감의 수혜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채무자에게 변제 의무가 있다면 채권자에게는 신중한 대출의 의무가 있다. 채무자의 갚을 능력과 의지를 잘 판단해서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이는 채권자 스스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기에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우선 금융회사들은 자신의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예금자를 비롯한 남의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보니 단기적 수익에 눈이 멀어 함부로 대출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그러다가 과도한 부실로 금융회사가 위기에 처하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우려하여 정부가 구제해주는 일이 허다하다. 외환위기 당시에 시중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그랬고, 이후 카드회사나 저축은행들도 그랬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채무자의 인권과 최소한의 정상적 생활을 보장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과도한 추심의 허용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극심한 추심을 예견하고도 채무자가 돈을 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채권자는 이런 추심으로 채무자의 고혈을 빨아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대출을 하게 된다. 이로써 지금 우리나라는 ‘빚 권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말하기 전에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점검해야 한다. 작년 연말에 서울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서 성금을 모아 주빌리은행에 적지 않은 액수를 기부한 적이 있다. 필자는 당시 노조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이분들도 모두 자기 빚 갚느라 고생들 하고 게실 텐데…”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막대한 구제 금융의 수혜자로서 도덕적 해이의 화신과도 같은 금융권에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반하장이 아닐까.
채무자가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닥쳤을 때는 머리를 맞대고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이행을 돕는 것이 우선돼야 하며, 부실채권시장은 엄격하게 규제돼야 하고, 과도한 추심은 철저하게 금지돼야 한다. 범람하는 대출광고에 대한 규제와 이자 제한의 강화도 절실하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약자를 약탈하는 못되고 손쉬운 돈벌이를 못하게 함으로써 금융회사들이 더욱 신중하고 효율적인 영업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다. 금융의 건전성과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판에 굴하지 않고 채무 탕감 정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하기 바라면서, 채무 탕감이라는 대증적 처방을 넘어서서 서민금융의 전면적인 개혁으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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