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인터뷰
김수정 기자 입력 : 2017.08.17 05:54
정부가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통 큰 빚 탕감정책을 내놨다. 이달 안에 금융위원회 소관인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을 전부 소각하고 연내 금융회사의 채권 소각도 유도할 방침이다. 대상자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25조원에 달하는 빚을 한번에 없애주는 서민금융정책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머니S>는 정부의 빚 탕감정책을 꼼꼼히 뜯어보고 역대 정권의 채무조정 추진사례를 진단했다. 나아가 채무조정정책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파헤쳤다.<편집자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겸 주빌리은행장(60)은 문재인정부의 ‘빚 탕감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빚 탕감정책은 비인간적인 추심으로 고통을 겪는 장기연체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일인데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
2년 전 주빌리은행을 출범한 이래 지금까지 원리금 기준 6300억원의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한 유 교수를 만나 빚 탕감정책과 논란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말 많은 빚 탕감정책, 막대한 세금 투입 ‘NO’
– 문재인정부의 ‘빚 탕감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달 말까지 국민행복기금은 5조6000억원(73만1000명), 금융공공기관은 16조1000억원(50만명)의 부실채권을 소각한다. 이를 통해 소멸시효가 만료된 총 123만1000여명의 부실채권 21조7000억원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채무의 굴레에 묶인 서민을 위해 정부가 나선다는 점에서 이번 정책을 환영한다. 상환능력이 없는데도 장기간 채권추심의 고통에 시달리는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유종일 한국개발원연구원 교수 겸 주빌리은행장. /사진=김수정 기자 |
– 부실채권 소각에 자금이 필요하지 않나.
▶이번에 추진되는 21조7000억원의 부실채권 소각에는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해당 부실채권을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소각은 전산삭제와 서류폐기 절차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부실채권의 소각 진행과정은 우선 기관별로 내규정비 후 소멸시효가 만료된 미상각채권을 상각한다. 이후 이사회가 채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 전산정보와 서류를 폐기한다. 이 과정을 거쳐 채권이 소각되면 채무자는 더 이상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채무자는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자신의 대출채권이 소각됐는지 여부를 ‘크레딧포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왜 많은 세금이 투입된다는 우려가 나오는가.
▶지난해 말 기준 대부업을 제외한 민간금융회사가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이 약 4조원(91만2000명)으로 추정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민간은행의 부실채권을 사서 소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 듯하다. 그 과정에 세금이 많이 투입된다고 우려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나온 금융위원회 로드맵에 따르면 민간금융회사가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정부가 직접 사서 매각하는 게 아니다. 금융위는 민간금융회사에 자율적인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을 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정책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최소한의 ‘인권수호’ 필요
– 부실채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소멸시효가 만료된 부실채권의 시효를 너무 쉽게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추심업체들이 이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싼값에 일괄 매입한 후 법원의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 지급명령을 신청한다. 이 경우 법원은 소멸시효완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지급명령을 실시한다. 문제는 지급명령을 받은 자가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10년의 소멸시효가 다시 부활하는 점이다.
주빌리은행. /사진=김수정 기자 |
– 이 문제로 채무자들은 어떤 상황을 겪게 되나.
▶기업대출의 경우 은행이 그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리스크가 커 채무조정을 통해 갚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개인대출(가계대출) 중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부실채권은 10분의1 가격으로 제2금융권 등에 매각하고 대손충당금으로 메운다. 이 부실채권이 추심(대부)업체로 흘러들어가면서 채무자들은 자신의 채권이 누구 손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때 만료시효를 쉽게 살릴 수 있는 허점을 악용한 추심업체들은 만료된 부실채권의 시효를 부활시켜 채무자를 협박한다. 금융위원회가 민간부문에 시효연장 관행을 개선하도록 당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채무자들이 마음의 짐을 많이 덜겠다.
▶정부가 나서서 소멸시효완성채권을 정리하면 채권추심업체에 시달리던 채무자들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와 형평성 논란이 나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인 채무자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 주빌리은행이 도움을 건넨 채무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40만~50만원에 불과했다. 또 부실채권 소멸 후 통지서를 보내면 수취인불명으로 반송된다. 이번에 소멸되는 채권규모를 인원수로 나누면 1700만원대다. 이 돈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최악의 경우 자살도 한다. 따라서 채무자들이 겪는 추심 고통을 끊어내려면 부실채권시장이 하루 빨리 정리돼야 한다.
– 빚 탕감정책과 관련해 당부할 말이 있나.
▶주빌리은행의 부실채권 매입 소식이 전해지면 추심업체들이 부실채권의 가격을 올려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정부 역시 앞으로 부실채권 소각을 확장하면 부딪힐 일이다. 순기능이 있으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책을 구상할 때 이처럼 구체적인 부분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또 금융과 복지, 고용정책이 잘 이뤄져야 빚 탕감정책이 일회성에서 그치지 않고 효과를 볼 수 있다. 빚 탕감정책은 상환능력이 없음에도 장기간 추심의 고통에 시달린 가장 취약한 계층의 재기를 돕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금융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금융업권 등도 동참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
원문: http://moneys.mt.co.kr/news/mwView.php?no=2017081010248081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