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이상 장기 연체자 136만 명 옥죄는 빚의 굴레…
한국만 유일한 ‘원금 초과 이자’ 막는 법 시급
차라리 다행인 걸까. 수렁에 빠진 순간이 어렴풋하다. “희뿌연 안개에 갇힌 듯” “필름이 끊긴 듯” 가물가물하다. 10년, 20년간 빚에 시달려온 장기 연체자들의 공통된 기억법이다. 이들은 “너무 많은 빚에 정신이 없어서”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감에 시달려” 빚이 생기고 불어난 과정을 온전히 복기하지 못한다.
기억이 흐려도 감정은 또렷하다. 얼마인지 모르는 빚에 십수년간 떨었다. “내 잘못이니 수습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이윽고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이자”에 지쳤다. “아이에게 빚은 물려줘선 안 된다”는 다짐이 이들을 붙잡아준 버팀목이었다.
언제 얼마의 빚 튀어나올지 몰라
빚을 진 경로는 여러 갈래다. 황지만(50·가명)씨는 28살이던 1995년 사업을 시작하는 친구의 보증을 서줬다. 보증 규모가 얼마인지도 몰랐다. 회사 일에 바빴던 황씨는 “너를 믿는다”며 친구와 함께 돈을 빌리는 곳에 가지 않았다. 얼마 뒤 일이 터졌다. 친구의 사채빚이 그에게로 넘어왔다. 수천만원이었다. 갓 결혼한 아내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어 대출에 기댔다. 공기업 사무직이던 그의 재직증명서에 은행들은 1천만원씩 ‘신용대출’을 쉽게 해줬다. 은행빚은 신용카드로 돌려막았다. 1~2년간 계속 빚이 빚을 낳았다.
돌려막기는 1997년 말 끝났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은행과 카드사들이 돌변했다. 2~3개월씩 이자 연체를 기다려주던 금융기관들은 연체 한 달 만에 거래를 중지했다. 이후 속전속결이었다. 은행은 황씨 월급 절반을 압류하고 나머지 절반은 지급 정지시켰다.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6개월을 버티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가 31살 때였다. 텔레비전만 틀면 ‘가족이 동반 자살했다’ ‘가장이 처자식을 살해하고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젊은 가장도 흔들렸다. 그때마다 “가족을 위해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신용불량자(채무불이행자)를 써주는 회사는 없었다. 40~50개의 일용직을 전전하며 하루를 버텼다. “먹고살기 바빠서” 빚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소지를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터라 상환독촉장 등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어디 어디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감이 있는” 정도였다. 당장 급한 빚만 “땜빵하듯이” 조금씩 갚았다.
그래서 늘 불안을 껴안고 살았다. 언제 얼마의 빚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2000년대 중반, 일 때문에 렌터카를 빌리러 간 날이었다. “신용 조회가 필요하다”는 직원의 말에 신분증을 건넸다. 모르고 있던 억대 빚이 나왔다. ‘뿔뿔이 흩어진 빚을 모으면 수억원이 되겠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하고만 싶었다.
그로부터 “빚을 다 찾아내 갚아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5년이 걸렸다. 2013년 매달 200만~250만원을 받는 일자리를 얻어 “이제 계획적인 상환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빠랑 왜 떨어져 있어?”라는 아이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가족과 생활을 완전히 합치려면 상환독촉장이 더 이상 날아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찾아갔다. ‘국민행복기금’과 ‘희망모아’(금융회사가 보유한 장기 연체 채권을 매입해 채무자의 빚을 30~60% 감면하고 최장 10년간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채무조정 지원 제도)로 매달 15만6천원씩 10년간 갚아나가기로 약정을 맺었다. “빚 굴레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정부, 이자 제한에 재산권 이유 난색
지난여름, 평온이 깨졌다. 빚이 그를 다시 찾아왔다. 꼭 20년 된 빚이었다. 1997년 대출금 323만원은 165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원금의 5배가 넘는 원리금을 갚아야 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대부업체였다. “국민행복기금에 다달이 돈을 갚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는데, 채권을 (캠코에) 팔지 않은 금융회사도 있었나봐요. 그 금융회사가 헐값에 채권을 대부업체에 판 거고요.”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장기 연체자들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의 도움을 받아 원금만 세 차례 나눠 갚는 것으로 대부업체와 절충했다. “이번엔 정말 다행인데, 또 (나도 모르게 불어난) 빚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돼요.”
한때의 황씨처럼 연체 기간이 12년이 넘는 가계 부실채권을 보유한 채무자는 136만 명(3월 기준·부실채권 규모는 16조원)에 이른다. 가계부채 ‘1400조원’ 시대의 밑단에서 가장 힘겹게 사는 이들이다. 이 중 연체가 15년 이상인 채무자도 29만631명(3조원)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민행복기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국민행복기금은 가계 부실채권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오래 묵은 빚이 생기는 핵심 원인은 금융 취약 계층이 감당하기 어려운 이자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 대신 대부업체를 찾아가는 금융 취약 계층은 때로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감수해야 한다. 상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의 경우 2016년 8월 기준 당시 35% 이상 고금리 대출 이용자는 평균 357만원을 빌려 평균 660만원(평균 대출 계약 기간을 5년으로 가정)의 이자를, 산와머니의 경우 평균 510만원을 빌려 930만원의 이자를 갚았다. 원금 대비 이자만 각각 184%, 182% 낸 셈이다.(제윤경 의원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먼저 대출 이자율이 너무 높다. 대부업체와 여신금융기관에 적용되는 최고 금리는 연 27.9%다. 개인 간 돈거래에 적용되는 최고 금리 역시 연 25%에 이른다. ‘약탈적 대출’에 대한 문제제기로 금융위원회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로 동시에 낮추겠다고 지난 8월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연 20%), 싱가포르(연 20%), 말레이시아(연 18%)의 이자율 상한보다 높다. 게다가 이자 부담을 줄이려 원금부터 변제할 수도 없다. 민법은 ‘비용→이자→원금’ 순으로 갚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자가 연체되면 이자에 이자가 붙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것이다. 대부업체가 323만원의 원금과 이보다 4배 많은 1327만원의 이자를 갚으라고 황씨에게 독촉장을 보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민주당 민병두·제윤경 의원실은 영국과 싱가포르처럼 원금 초과 이자를 수취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채권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금융회사가 연체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저소득자에 대한 대출을 기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던 ‘원금 초과 이자 부과 금지’는 100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또한 정부는 대출 연체시 채무자가 비용·이자보다 원금을 우선 변제하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민법상 원칙의 예외를 인정할 사유인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이다.
‘1만원 갚으면 이자·원금 깎아주겠다’ 속여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채권 추심도 장기 연체자의 재기를 막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박민석(47·가명)씨의 꿈은 짧게 끝났다. 32살이던 2002년 차린 봉제공장은 6개월 만에 휘청였다. 공장에 일감을 주던 국내 의류업체들이 생산단가를 낮추려 중국 공장으로 거래처를 바꾼 것이 직격탄이 됐다. 매달 직원 60명의 월급, 공장 임대료, 원단 대금 등으로 들어가는 1억원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1년6개월간 닥치는 대로 지인에게 돈을 꾸고 신용카드 대출을 받으며 버티다 2004년 폐업했다. 공장 자본금과 집으로 “빚잔치를 하고 나서도” 수중에 5천만원의 빚이 남았다. 이를 혼자 감당하려 아내와 이혼했다.
처음엔 혼자 집에서 “정신이 멍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지냈다. 깊은 우울감에 빠져 일할 생각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5년이 지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출을 받은 적도 없는 대부업체들에서 “돈 갚으라”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어떤 대부업체는 박씨의 주소지로 등록된 누나의 집에 찾아와 “동생 어디 있냐. 연락처를 내놓으라”고도 했다. 나중에야 “돈을 빌려준 카드회사가 대부업체로 채권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전국을 돌며 대리운전과 일용직 노동을 해 100만원, 200만원 빚부터 갚아나갔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금융 공기업에서 빌린 대출금 2천만원도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13년이 지난 2015년엔 이자가 불어 3800만원이 됐다. 원금 2천만원을 한번에 변제하는 내용으로 금융 공기업과 채무 조정에 합의한 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이듬해 빚에서 벗어났다.
박씨 사례는 악성 채무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경로를 보여준다. 금융회사가 채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채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그러면 더 이상 채무자는 원리금을 상환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대부업체·추심업체는 100만원짜리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2만~3만원에 사들여 추심을 통해 수익을 낸다. 소멸시효를 잘 모르는 채무자들이 ‘1만원만 갚으면 이자도 면제해주고 원금도 깎아주겠다’는 말에 속아 돈을 송금하면 다시 시효가 살아난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 금융회사가 법원에 지급명령 등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효를 한번에 10년씩 늘려갈 수도 있다. 채무자들이 반평생 가혹한 추심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8월 말 국민행복기금, 금융 공공기관이 보유한 21조7천억원 규모의 소멸시효 완성 채권을 소각해 123만 명의 오랜 빚을 정리해줬다. 또 시효 15년·25년짜리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장기 연체 채권의 지원 대상이나 수준을 검토해 9월이나 10월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만 이 조처는 일시적 소각에 불과한 만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 제윤경 의원실에선 소멸시효 완성 채권의 추심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한 피해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책임(3배)을 묻고 단체소송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을 발의해놓고 있다. 물론 5개 원내정당이 여소야대의 국회를 꾸려가는 상황에서 이 법안이 언제 통과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유종일 주빌리은행장(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은 “장기 연체자에 대한 추심 제한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해서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지나친 압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내 명의’인 휴대전화
박민석씨의 휴대전화 번호는 예전 그대로다. 빚 독촉 전화가 수시로 걸려와 괴로울 때도 전화번호는 바꾸지 않았다. “유일한 내 명의”라서다. 그는 채무불이행자가 된 뒤 14년간 자신의 이름으로 통장도, 신용카드도 만들 수 없었다. “휴대전화 명의마저 바꾸면 내 것이 아무것도 안 남잖아요. 얼마나 허무해요. 그래서 ‘그것만은 지키자’고 했어요.” 이제 남은 빚은 2천만원. “앞으로 5년이 걸릴 거 같아요. 빚을 다 갚으면 내 이름의 통장도 만들 수 있겠죠.”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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