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거주하는 박모씨(60세). 6년 전 이혼 후 혼자 사는 그는 주거급여와 일용직 수입으로 지냈다. 코로나로 일감이 끊기면서 그는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다리까지 다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간혹 일자리가 있어도 선뜻 나설 수 없었다.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통장이 그에게는 없었다. 박씨는 이미 수년 전에 카드 빚을 지고 빚독촉을 받아왔다. 박씨의 채권 금융회사가 시중은행 10곳에 대해 압류를 했다.
아픈 다리와 실직으로 그는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다. 돈을 빌릴 곳도 없었다. 빚 독촉에 통장 압류까지 된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줄 곳은 없었다. 박씨는 먹는 것을 줄여 나갔다. 굶는 날이 많아 졌고 근력이 떨어져 현기증이 났다.
박씨가 배고픔에 지칠 때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것이 바로 ‘극저신용자 대출 제도’였다. 그는 주민센터를 찾았다. 주빌리은행이 주민센터로부터 박씨의 긴급자금 대출신청을 건네받고 극저신용 대출을 승인했다. 박씨는 50만원을 받았다. 주민센터를 방문한 지 10일 만의 일이었다.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박씨에게는 50만원은 큰돈이었다. 그는 쌀과 반찬과 라면을 살 수 있었다. 대출과정에서 어떤 절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신용상태와 인적사항을 적어 낸 것이 전부였다. 전화심사 조차 없었다. 박씨는 그렇게 극저신용자 대출가운데 긴급자금의 수혜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이었지만 박씨에게는 천금같았던 돈이었을 것이다. “위태로운 그때 그 돈이 아니었다면 생사를 고민했을 것”이라며 “삶의 희망을 줘서 고마웠다”는 박씨의 감사가 우리는 보람으로 다가왔다. 주빌리은행은 박씨를 신용회복위원회와 연계했다. 빚 조정을 위해서다. 빚 조정을 해야 압류된 통장을 쓸 수 있게 된다.
◆ 기본대출을 말한다
지난달 17일로 2021년도 경기도 극저신용자 대출 사업이 일달락 됐다. 주빌리은행은 지난해 경기도 극저신용 대출의 사업수행기관으로 지난 한 해를 보냈다. 그 동안 금융소외계층을 상대로 채무조정을 해 온 노하우가 입체적인 극저신용자 대출 상담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박씨에게 적용된 극저신용자 대출금은 ‘코로나19 긴급자금’ 대출 이었다. 이 대출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출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긴급은 논스톱을 말한다. 심사 절차가 없다. 코로나가 창궐했던 당시 박씨와 같은 상황에서 7등급이하의 신용을 가진 사람에게 지원한 대출이었다.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할 만큼 위기상황에서 신용도나 상환능력을 따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긴급대출에 심사절차가 없는 이유다. 반드시 주빌리은행이나 경기복지재단을 방문할 필요도 없다. 경기복지재단은 극저신용자 대출지원을 위해 경기도 전 지역의 주민센터와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기본대출에 대한 애기들이 나오 곤 한다. 돌이켜보면 극저신용자 대출 사례 가운데 박씨의 얘기가 소위 ‘기본 대출’의 전형이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돈이 있어 대출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은 돈을 빌리기 쉽다. 금융회사가 너도 나도 나서 빌려주려고 한다. 그것도 저금리다. 정작 돈이 필요한 금융소외자들은 돈을 빌릴 곳이 없다. 박씨와 같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돈도 마찬가지다. 신용도 낮고 담보할 자산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대출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는 금융의 문의 넓고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그 문이 좁다.
기본대출은 이 간극에서 나온 제도다. 금융의 문이 좁은 사람들에게도 급박한 사정은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더 많지 않겠나. 최하의 신용를 가진 사람들, 빚이 많은 사람들, 압류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사람들, 이들에게도 다급한 상황에서는 돈을 빌려줄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기본대출은 금융과 복지 영역에 있다. 반드시 갚아야 하는 돈이라서 금융이고 상대적으로 극한 상황에서 빌려준다는 점에서 복지다. 다쳐서 일할 수 없는 상황, 벌금을 낼 수 없어서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 빚을 갚고 나니 생계가 어려운 상황, 배고픈 상황이 기본대출이 주목하는 상황이다.
주빌리은행은 극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지원 업무를 해왔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액이 없어 위기를 겪은 사람들을 목도했다. 또 보았다. 소액의 금융으로 삶의 희망을 갖는 모습을.
경기도 극저신용자 대출은 오는 3월 다시 시작된다.
※ 주빌리은행(롤링주빌리)은 불운한 채무자들의 새 출발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다. 채무자들의 재기를 어렵게 하는 장기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거나 채무자들을 대리해 채권금융회사와 채무조정 협상에 나서는 일이 주요 활동영역이다. 최근 경기도의 극저신용자 대출 지원 사업의 수행기관으로 선정돼 위기 상황에서도 신용등급이 낮아 자금을 융통할 수 없는 채무자들을 돕고 있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www.econovill.com)